통일연구원 박영자 연구위원 “북한은 전제군주적 약탈국가… 아래로부터의 반격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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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지난 8일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대회에서 ‘고난의 행군’을 언급했다. 이 말의 의미가 1990년대 있었던 ‘고난의 행군’이 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때 같은 구시대적 공포정치를 다시 실시하려는 김정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 ▲ 지난 6일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 대회 개막식 연설을 하는 김정은.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의 '고난의 행군', 내부 결속을 위한 정풍운동 예고”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박영자 연구위원은 최근 내놓은 온라인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은 ‘정권의 입장’과 ‘주민의 입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데, 김정은이 노동당 세포비서대회에서 언급한 것은 ‘정권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정권에 ‘고난의 행군’은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 당시 겪었다는 것으로, 정권과 체제를 지키기 위해 내핍을 견디자는 의미라고 한다. 반면 주민들에게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후반 있었던 대규모 아사 같은 일이다.이로 인해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을 언급하자 외부에서는 주민들의 처지에서 보는 ‘고난의 행군’을 떠올렸지만, 실은 “사상 강화에 기초한 내핍 요구와 정풍운동 선언을 촉구한 것”이라고 박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김정은이 당 세포비서대회에서 당원들의 세도·부정부패 척결, 관료주의 타파, 당내 상호비판·사상투쟁·사상교육·혁명적 규율 수립 등을 강조한 것 또한 중국의 ‘정풍운동(1950~60년대 마오쩌둥이 공산당 내부 숙청을 위해 추진한 정치운동)’과 거의 같은 맥락이라고 박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김정은, ‘시장경제’ 적응한 북한 주민들에 체제 위협 느껴
김정은이 4년 만에 당 세포비서대회를 열고 ‘북한판 정풍운동’을 예고한 이유는 내부 동요·불안을 잠재워 체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박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배급체제가 무너진 뒤 30년 동안 진행된 시장경제화와 정보화로 북한사회 또한 물질주의화·개인주의화하면서 김일성·김정일 때 같은 통치가 어려워진 것을 김정은도 알고 있다고 박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20대에 집권해 위로부터의 변화를 주도했던 김정은은 ‘아래로부터의 변화’ 가능성도 인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박 연구위원은 “따라서 다시 ‘내핍과 사상 강화’라는 과거로의 회귀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는 부담감도 상당할 것”이라고 풀이했다.박 연구위원은 이어 “김정은과 노동당이 외부 환경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오랫동안 해온 일, 즉 절대권력자를 앞세워 사상통제·규율강화로 주민들을 통제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체제의 힘은 절대권력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며, 노동당 시스템을 통해 생활하는 수백만 명의 당원과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저렴하고 성실한 노동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김정은으로서는 ‘공포정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정은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 ‘아래로부터의 반격’
이런 현실에서 김정은은 앞으로 5년 동안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첨단 전략무기 개발’과 ‘핵무기 체계 고도화’를 추진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경제적 궁핍 때문에 사회적 동요와 불안이 일어나는 것을 ‘대중적 공포정치’로 억압할 것이라고 박 연구위원은 내다봤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연이어 대규모 자연재해가 생기지 않는 이상 향후 5년 동안 1990년대 중반과 같은 기아와 아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0년대 배급체계가 무너지고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북한 주민들도 나름대로 생존수단을 확보했고, 김정은정권 또한 다양한 대북제재 회피 수단을 통해 핵개발을 하고 체제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정권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돈과 자유의 맛’을 알아버린 북한 주민들과 하부 기관들의 이반(離叛)”이라고 박 연구위원은 강조했다.자원이 부족해 내부 노동력에만 부가가치 창출을 의존하는 ‘전제군주적 약탈국가(autocratic predatory states)’로 북한을 규정한 박 연구위원은 “김정은에게는 최고권력자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 철회가 가장 큰 위협”이라며 “이제 우리는 김정은의 ‘대중적 공포정치’에 북한 주민과 하부 기관들이 펼치는 ‘아래로부터의 반격’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