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AZ 백신 수출제한 검토" 언급… 전문가들 "명분도 자격도 없어, 엄청난 불이익 초래" 우려
  • ▲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국내 첫 출하가 시작된 지난달 24일 오전 경북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지게차가 백신을 이송 차량에 싣고 있다. ⓒ뉴시스
    ▲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국내 첫 출하가 시작된 지난달 24일 오전 경북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지게차가 백신을 이송 차량에 싣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정부가 국내에서 위탁생산하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수출제한'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섣불리 수출제한에 나섰다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도가 추락하고 향후 다른 백신 도입에도 차질이 생기는 등 후폭풍이 거셀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유진 코로나예방접종대응추진단 백신도입팀장은 지난 6일 정례 브리핑에서 “국내 생산 AZ 백신의 수출제한 조처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조기에 백신이 적절하게 도입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방역당국  "모든 대안 검토"… 지난달 30일엔 "수출제한 영향 종합 검토해야"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한다"는 발언에는 곧 수출제한 조치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정부는 당초 AZ 백신의 수출제한은 대안이 아니라는 견해를 유지했다. 정 팀장은 지난달 30일 "현재로서는 수출제한 조처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영향이나 수출제한 이후 다른 백신이 우리나라에 공급되는 데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부터 불과 일주일 만에 기조를 바꾼 것이다.

    정부는 다만 AZ 백신 수출제한 검토를 본격적으로 착수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범정부 백신 도입 태스크포스' 회의와 지난 2일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상황점검회의'에서 수출제한 방안은 안건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질병청이 AZ 백신 수출제한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하면서 정부 내 분위기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AZ 백신은 경북 안동 소재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위탁생산하며,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개발도상국 등에 공급된다. 우리 정부가 수출을 제한할 경우 개발도상국들의 백신 조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질병청에 따르면, 올 1·2분기 AZ 백신 접종 예정인 우리 국민은 약 849만 명이다. 그런데 현재 2분기 도입이 확정된 AZ 백신은 450만6000만 명분에 불과하다. 2차 접종을 제때 완료하기 위해서는 398만4000만 명분이 추가로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개별 계약을 통해 3분기에 AZ 백신 571만 명분이 추가 도입되기 때문에 접종계획에 차질이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전 세계 각국이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AZ 백신이 제때 국내에 도입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의료계의 분석이다.

    AZ 백신 2차 접종 제때 하려면 398만4000만 명분 추가 도입돼야

    전문가들은 정부 기조가 변한 이유가 백신 물량부족으로 1차 접종자가 2차 접종을 제때 받지 못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수출제한은 도를 넘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7일 통화에서 "정부가 AZ백신 수출제한을 검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 것은 AZ 백신 2차 접종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또 "현재 국내 생산되는 AZ 백신은 위탁생산 방식이어서 우리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문재인정부의 억지이자 생떼가 국제사회에 통할 만큼 방역상황이 위급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초반에 서둘러 백신 확보에 나섰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늑장대응으로 이런 극단적 방안까지 검토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한 이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무능함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늑장대응에 극단적 방안 검토… 정부 무능 전 세계에 알리려 하나"

    김우주 고려대 감염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우리나라가 AZ 백신 수출을 제한하면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며 "인도는 하루 확진자가 10만 명씩 나오는 위급한 상황이어서 백신 수출을 제한했더라도 그나마 큰 비난을 면했던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지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쓸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백신 수출을 제한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며 "정부가 다급하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교수는 "인도가 백신 수출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큰 비난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으로 꼽히는 국가인 데다 확진자가 급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현재 우리나라는 백신 수출을 제한할 명분도 자격도 없다. 정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인도는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우한코로나(코로나19) 2차 유행 조짐과 백신 내수공급에 대비하기 위해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AZ 백신 수출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백신의 약 60%를 만들어 '세계의 백신공장'으로 꼽히며, 지난달 말 기준 76개국에 백신 6000만여 회분을 수출했다.

    인도가 AZ 백신 수출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자국민 접종을 위해서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누적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나라로, 지난달 24일 기준 총 1173만여 명이 감염됐다. 사망자는 누적 16만여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