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도 적막감만 감도는 동자동 "동네가 초상집 분위기… 땅 뺏어간다는 정부, 북한보다 더하다"
  • ▲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창회 기자
    ▲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창회 기자
    설 다음날인 13일 오후 본지 취재진이 찾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일명 '서울역 쪽방촌' 일대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명절 연휴인데도 동네를 오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쓸쓸함이 가득했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새해를 맞은 설렘보다는 근심·걱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안하더라도, 이날 동자동 곳곳을 돌아다니던 취재진에겐 문을 연 가게보다 문을 닫은 가게를 찾는 게 쉬웠다. 한마디로 '죽은 동네'나 다름없었다. 이 일대에 불어닥친 공공개발 악재로 지역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된 탓이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내 땅 뺏기게 생겼는데 명절은 무슨 명절이야? 이 동네 지금 초상집 분위기야. 보면 몰라?"

    공원 앞에 앉아 멍한 얼굴로 골목만 바라보던 72세 송모씨. 취재진이 송씨에게 "명절 연휴인데 어디 놀러 안 가시나"라고 말을 건네자 이처럼 다짜고짜 윽박질렀다. 그러더니 이내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면 몰라? 동네가 초상집이라고"

    송씨는 "내가 평생을 이 동네에서 살았어. 재개발된다 재개발된다 하니까 가진 거 없이 그거만 바라보고 버텼단 말이지"라며 "그런데 정부가 갑자기 땅을 뺏어간다는데 이런 날벼락이 어딨어? 이제 길바닥에 나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간 서울역 쪽방촌 주민들은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번듯한 새 집을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수십년을 버텨왔다고 송씨는 하소연했다.

    "내가 여기 살면서 집이 좁아서 손주 녀석들 놀러오란 말도 못해. 기자양반, 길 좀 한 번 둘러봐요. 어디 차 댈 마땅한 곳 하나 있나. 그래도 내가 버티고 버틴 건 우리 자식한테 도움이라도 되려고, 그거 하나였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동자동 토지 소유자의 한탄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내 땅 강탈당할 지경… 누구 하나 죽어봐야 정신 차릴거야?"

    그는 "'쪽방촌'에 산다는 사실이 혹시 자식들에게 부끄러움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나 하나 조금만 고생하면 그래도 애들에게 뭐 하나는 남겨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만으로 살아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런데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나라가 내 땅을 맘대로 뺏어간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진짜 누구 하나 죽어봐야 정신 차릴거냐고"라고 언성을 높였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주도 정비사업은 서울역 쪽방촌 일대에 악재가 됐다. 정부는 지난 4일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총 84만6000가구에 이르는 공공주택을 5년 동안 공급하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다. 

    공공 주도로 기존 재개발·재건축 구역의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고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지를 새롭게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공공 주도로 저렴한 주택을 대량 공급하면 집값이 안정화되고 전·월세난도 해소될 것이라는 게 정부가 내건 명분이다.
  • ▲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창회 기자
    ▲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정부의 공공주택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창회 기자
    "살다살다 북한보다 더 한 꼴 본다"

    문제는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1호 사업인 서울역 쪽방촌 공공재개발 계획에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사유재산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토지·건물주를 개발 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재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정부가 토지 소유자들 중 무주택자이거나 주소지가 후암 1구역인 사람들에 한해 입주권을 주는 방식도 반발을 사고 있다.

    김모씨(80세)는 "내가 살다살다 이런 법은 들어본 적이 없어. 이건 공산주의도 아니고 북한보다 더 한거지"라며 "뭐 보상을 어떻게 해주겠다, 어디로 이사가라 그런 말 하나 없이 땅 내놓으쇼 라고 먼저 말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비난했다.

    김씨는 "이게 자기네들 땅이야? 왜 공익이라면서 없는 사람들 땅만 뺏어간다는건데?"라며 "그렇게 나라 걱정하면 금배지 단 양반들부터 자기들 땅 내놓으라 해보시오. 자기들은 집 몇 채씩 가지고 재산 불리는 데 정신없으면서. 없는 사람들만 호구지"라고 호통을 쳤다.

    최모씨(63세)는 "남편이 죽으면서 남겨준 게 이 집 하나인데 나라가 무슨 권리로 뺏어간다는거야"라며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건지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할지 답답해 죽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없는 사람들만 호구… 이게 '공익'이라고?"

    최씨는 "누군 어차피 정부가 사업하는 데 한 몫 단단히 챙겨주지 않겠냐고, 호재인데도 돈 욕심에 눈이 멀었다 그런 소리를 하는데 그럼 그 사람들이 여기서 수십 년 살아보라고 해라"라며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들쑤셔 놓으면 우리보고 나가 죽으란 말 밖에 더 되냐"라고 토로했다.

    동자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는 취재진에게 "정부 발표 이후 동자동은 아주 그냥 죽었어. 망한 거지"라고 말했다. 이 공인중개사는 "재개발 하나 믿고 쪽방촌 산다는 무시도 참아가며 살아온 양반들인데 나라가 뺏어간다니 당연히 화가 나지"라며 "이러다 용산 재개발 때처럼 사람 몇몇 죽어나가게 생겼어. 진짜 큰일이야"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공공개발한다는데 거래가 되겠어? 이 동네 공인중개사무소도 다 망했지. 그냥 명절에는 다 문 닫고 집에서 쉬는 거지"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 ▲ 정부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일대 쪽방촌 4만7000㎡를 2410가구가 들어서는 공공주택 단지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뉴시스
    ▲ 정부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일대 쪽방촌 4만7000㎡를 2410가구가 들어서는 공공주택 단지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