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봉쇄조치도 빈곤 못 막아… 정치적 목적 위해 코로나 활용하는 포퓰리즘 리더십 도마에
  • ▲ 지난달 22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묘지에 코로나19 사망자가 매장되고 있다.ⓒ연합뉴스
    ▲ 지난달 22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묘지에 코로나19 사망자가 매장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월말 브라질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라틴아메리카(중남미)에서 우한 코로나 피해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15일 오전 현재 전 세계 확진자 수는 782만여명, 사망자수는 43만명으로, 중남미에선 총 160만명이 확진됐다. 중남미 지역은 전 세계 인구의 7%가량인데 비해, 코로나 확진자 비율은 20%에 달한다. 경제적 피해 또한 중남미 지역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빈곤과 포퓰리즘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남미 국가 중 가장 강력한 봉쇄조치를 취했던 페루의 경우 3200만 인구 중 22만명이 확진, 6600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페루는 최초 확진자 발생 후 약 2주간 즉시 봉쇄조치를 단행하고, 거리에 군대까지 배치하는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페루는 병상이 모자라 확진자 중 상당수가 자택에서 가족의 간병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산소통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봉쇄조치는 강력했지만… 빈곤이란 구멍 못막아

    전문가들은 강경조치에도 불구하고 페루의 코로나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 이유를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에 종사하는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비공식 경제'란 등록 또는 과세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으로 보수를 받는 경제활동을 의미하는데,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페루의 경우 전체 근로자의 70%가 '비공식 경제'에서 일한다"고 분석했다. 봉쇄조치에 관계없이 '비공식 경제' 활동은 지속됐고, 이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봉쇄조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빈곤이 우한코로나의 주요 전파경로가 되는 사정은 대다수 중남미국가가 비슷하다. 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의 감염병 전문가 자르바스 바르보자 박사는 PAHO 유튜브 방송을 통해 "중남미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유럽과는 그 양상이 많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바르보자 박사는 "유럽에는 빈민이 그리 많지도 않고 대규모 슬럼가도 없다"며 "중남미에서는 이런 봉쇄조치를 오랫동안 취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남자답게 받아들이자" 지도자의 포퓰리즘이 사태 키워

    현재 전 세계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브라질(15일, 4만3000명)은 페루와 정반대로 당국의 미온적 대처가 논란이 됐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코로나는 작은 감기에 불과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건 당연하다. 남자답게 받아들이자" 등 허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봉쇄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여러 지방정부와는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퇴진 공세에 시달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한코로나 차단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멕시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암로) 대통령은 3월 말에도 "외출해서 식당을 이용하라"는 메시지를 내는가 하면, 보건당국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는 중에도 대규모 집회를 열고 아이의 볼에 입맞추기를 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암로 대통령은 지난 4월 말에는 "멕시코는 감염병을 길들였다. 병원은 더 이상 환자로 넘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멕시코는 15일 오전 기준 확진자가 14만명, 사망자가 1만7000명을 넘었는데, 외신들 사이에선 멕시코 정부가 코로나 상황을 축소 발표한다는 의혹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

    민주주의 안정된 나라에선 코로나 피해 양호

    남미 대륙 대부분의 국가들은 페루처럼 봉쇄조치를 적극적으로 폈다. 하지만 봉쇄조치는 법집행력이 약하고 정부에 대한 회의가 팽배한 나라에서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이들 나라 사례를 통해 확인됐다.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지진, 화산폭발, 다른 전염병 등 모든 것을 다 겪어봤지만, 코로나 같은 위기는 처음"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에콰도르는 모든 외국인 입국금지, 집회와 대중행사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확산을 막지 못했다. 주에콰도르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에콰도르 내 확진자는 4만4440명, 사망자는 6182명이다. 

    반면, 우루과이와 코스타리카 등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나라에서는 코로나 피해가 크게 낮은 수준이다. 현재까지도 모든 외국인 입국을 원칙적으로 막고 있는 우루과이는 지난 12일 기준 확진자는 847명, 사망자는 23명이다. 코스타리카는 5일 기준 확진자 1228명, 사망자는 10명에 그쳤다. 이 두 나라는 국가 지원 의료체계가 잘 구비돼 있고, 국가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또한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다. 

    중남미 올해 GDP 성장률, -9%까지 예상

    우한코로나 확산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남미대륙에서 가장 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비즈카라 페루 대통령은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에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심각하다"며 "이것은 단순히 건강이나 위생의 문제를 떠나 전례없는 사회적·경제적 위기"라고 말했다. 

    미국 월가 은행들은 올해 중남미 지역 GDP 성장률을 -9~-6%로 보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가 우한코로나에도 불구하고 플러스성장이 예상되는 것에 비하면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력 외에도 만성적 빈곤·지도자의 부도덕·불안정한 사회체제 등이 겹쳐 중남미 지역의 전염병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