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각목 동원해 마구잡이로 홍콩 시민 폭행… 중국압송 악법 파동의 현재와 내막⑦
  • ▲ 중국압송악법 저지 시위대 행진 모습. 완차이에서 촬영했다. ⓒ허동혁
    ▲ 중국압송악법 저지 시위대 행진 모습. 완차이에서 촬영했다. ⓒ허동혁
    홍콩에서 중국으로 범죄 용의자 송환을 가능하게 하는 ‘도주범 조례’(일명 중국압송악법) 파동과 관련해 21일에도 시위가 열렸다. 이날 시위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중국 정부기관이 공격당하고, 폭력배가 시민을 폭행했다. 경찰은 6월 12일 입법회 시위 후 사용하지 않던 고무총을 발사했고, 시야를 가릴 정도로 다량의 최루탄을 발사했다. 

    주최 측 추산 43만 명이 참가한 시위 행진은 경찰에 신고한 것보다 길어졌다. 시위대는 당초 경찰로부터 오후 3시 코즈웨이베이를 출발하여 완차이까지 2.5km 구간만 행진 허가를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서쪽으로 계속 행진해 정부기관이 몰려 있는 애드미럴티를 지나 센트럴까지 진출했다.

    시위대의 목표는 경계가 삼엄한 정부기관이 아니었다. 이번 중국압송악법 반대시위의 특징대로 시위대는 센트럴에서 서쪽으로 계속 행진, 오후 6시30분쯤 완차이에서 4.5km 떨어진 중국인민정부 홍콩연락판공실(중련판)에 도착했다. 중국 정부의 홍콩출장기관인 중련판은 시민들에게는 홍콩 내정에 간섭하는 ‘총독부’라 불린다.
  • ▲ 시위대가 일명 '홍콩 총독부'라고 부르는 중련판에 칠한 낙서들. ⓒ허동혁
    ▲ 시위대가 일명 '홍콩 총독부'라고 부르는 중련판에 칠한 낙서들. ⓒ허동혁
    중련판은 협소한 장소에 위치해 있고, 시위 행진 경로에서 멀었다. 당국은 누구도 중련판을 공격하리라고 예상하지 않은 듯 경비를 느슨히 했다. 시위대는 중련판에 걸려 있는 중국 정부 휘장과 건물에 스프레이로 ‘지나(支那, 중국을 비하하는 명칭)’ 등의 낙서를 하고 계란을 던졌다.

    오후 8시30분쯤 경찰 진압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위대는 후퇴했다. 시위대와 경찰은 중련판과 센트럴의 중간지점인 마카오 페리 터미널이 있는 셩완(上環)에서 대치했다. 경찰은 오후 10시30분쯤 시위대를 향해 다량의 최루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 앞에는 민주파 의원 여러 명이 시위 중재를 위해 서 있었다. 이들은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 홍콩 정부와 중련판이 시위대 비난성명을 내놓은 오후 11시쯤 경찰기동대(PTU)가 나타나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을 발사했다. 이때 PTU가 한 여기자를 발로 구타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 ▲ 셩완 거리에서 발견한 고무탄과 탄피. ⓒ허동혁
    ▲ 셩완 거리에서 발견한 고무탄과 탄피. ⓒ허동혁
    비슷한 시각 홍콩 북부 선전 국경 인근 옌롱(元朗)에서는 흰 옷을 입은 남성 무리들이 옌롱역 역사와 지하철 안에서 시민들과 민주파 람츅팅(林卓廷) 의원을 쇠파이프와 각목 등으로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이들은 옌롱에 본거지를 둔 토착 폭력배였다. 중국인도 일부 포함됐다고 했다.

    시위대는 폭력배 출현 소식을 듣고 옌롱으로 집결해 폭력배들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22일 자정 무렵 개입했다. 폭력배들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본거지 주변에 몰려 있었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3명을 체포했다. 이들이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하기 직전 한 친중파 의원이 이들과 악수하며 영웅이라고 칭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강경 태도로 인해 사회 불안이 가중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람 장관은 지난 14일 샤틴(沙田) 쇼핑몰에서 시위대에게 구타당해 입원한 경찰은 위로방문했지만, 시위대 가운데 부상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않는 태도를 보였다.
  • ▲ 본거지에서 대기 중인 옌롱 지역 폭력배들. 오성홍기가 보인다. ⓒ허동혁
    ▲ 본거지에서 대기 중인 옌롱 지역 폭력배들. 오성홍기가 보인다. ⓒ허동혁
    한편 친중파는 지난 20일 입법회 인근 공원에서 경찰 추산 10만3000명(주최 측 추산 31만6000명)이 모인 가운데 친정부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민주파 시위대를 폭도라고 비난하며 정부와 경찰을 옹호했다. 집회 주변에는 중국 본토어를 사용하는 중국인이 전세버스를 단체로 오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에게 출신지를 물으면 한결같이 "우리는 중국 홍콩인"이라고 답했다.

    시위가 홍콩 주변으로 확산되고 매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폭력사건이 발생하는 가운데 폭력배가 등장했다. 경찰은 시위대에게는 강경진압으로 일관하면서 폭력배에게는 싸움을 말리는 시늉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