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전세계 지점서 해고, 부실자산 매각 나서"… "돈세탁 수사 후 몰락" 분석
  • ▲ 독일 프랑크푸르트 소재 도이체 방크 본점 건물.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독일 프랑크푸르트 소재 도이체 방크 본점 건물.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49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 방크가 구조조정을 시작했다고 BBC 등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BBC는 9일(이하 현지시간) “도이체 방크가 오늘부로 1만8000명 감원 계획을 시행했다”고 전했다.

    런던·뉴욕·도쿄 등 세계 각국 지점서 동시다발 해고

    BBC에 따르면, 도이체 방크는 지난 7일 대량 감원을 비롯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는 세계 전역에서의 정리해고, 부실자산 및 비핵심 사업 매각 등이 포함돼 있다.

    BBC는 “도이체 방크가 지난 일요일 발표한 급진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9일부터 1만8000명 감원을 시작했다”며 “런던에서는 이날 오전 11시, 사무실 출입증이 정지된 것을 확인한 일부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갔다”고 전했다. BBC에 따르면, 런던에 있는 도이체 방크는 ‘더 시티(런던 금융가의 속칭)’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한 회사 가운데 한 곳으로 근무 인원은 8000여 명에 달한다.

    BBC는 “도이체 방크 측은 아직 감원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런던과 뉴욕의 트레이딩 인력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BBC에 따르면, 은행 대변인은 아시아 지역 주식투자를 관리하는 홍콩에서의 구조조정으로 어느 정도 인력이 감원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BBC에 따르면, 도이체 방크는 2022년까지 74억 유로(한화 9조8000억 원)를 들여 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이며, 전 세계 직원 수를 7만4000명 선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은행 측은 구조조정 시행으로 인한 비용 상승 때문에 올해 2분기에는 28억 유로(한화 3조71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이체 방크 “구조조정으로 더욱 강해질 것”…주가는 5% 폭락

    도이체 방크 대변인은 “이번 구조조정이 은행을 더욱 깨끗하고 튼튼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우리는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업에 가용자원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며 “세계 기업들이 원하는 국제적인 무역 지원과 투자를 뒷받침하는데 필요한 금융·재무 상품 전문 은행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도이체 방크 CEO 크리스티앙 슈잉은 지난 8일 전화 회의에서 지역별 인력감원 계획을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이미 세계 각 지점에서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은 확인했다. 슈잉 CEO는 “정리해고는 고통스러운 결정이지만 은행의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은행 측의 설명을 믿지 않았다. BBC는 “8일 도이체 방크의 주가는 투자자들의 반응으로 5% 이상 하락했다”고 전했다.
  • ▲ 도이체 방크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모색 폰세카 사건. 중국과 한국, 일본의 최고위층 정치인과 재벌 등이 돈세탁을 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도이체 방크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모색 폰세카 사건. 중국과 한국, 일본의 최고위층 정치인과 재벌 등이 돈세탁을 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불과 9년 전만 해도 세계 2위 규모였던 도이체 방크가 이렇게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된 이유를 두고 BBC는 “지난 4월 경쟁은행인 코메르츠 방크와의 합병 협상이 실패한 것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0년 넘게 쌓인 악재, 코메르츠 방크 M&A 실패로 터져

    BBC는 “당시 독일 정부는 금융을 국가대표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두 은행의 합병을 지지했다”면서 “아무튼 두 은행은 합병을 할 경우 얻는 이익보다는 과도한 규모로 인한 비용 증가 때문에 위험도가 크다며 합병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BBC는 이어 “도이체 방크는 지난 수년 동안 투자은행 분야의 하락 때문에 분투해왔고, 여러 차례 사업을 일으키려 시도를 했었다”면서 “가장 마지막의 야심찬 계획은 바로 최고경영자를 사임시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BBC가 설명한 도이체 방크 몰락의 원인은 ‘돈세탁’이다. 2018년 11월 29일 BBC 보도에 따르면, 도이체 방크는 이날 독일 연방검찰에게 프랑크푸르트 본사를 비롯해 독일 곳곳의 지점을 압수수색 당했다. 돈세탁 혐의였다. 도이체 방크 임직원 2명은 이미 고객의 돈세탁을 도운 혐의로 체포된 뒤였다. 독일 연방검찰은 이날 170여 명의 경찰과 수사관을 동원해 도이체 방크를 압수수색했다.

    BBC에 따르면, 독일 연방경찰은 이해 8월부터 2013년부터 2018년 초반까지 도이체 방크가 범죄조직의 수익을 돈세탁 해준 정황을 잡고 수사했다. 독일 연방검찰이 적발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도이체 방크가 2016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자회사를 세워 900여 명의 고객들로부터 받은 돈 3억1100만 파운드(한화 4585억 원)을 세탁해줬다고 한다.

    BBC는 “이 수사는 2016년 불거진 ‘모섹 폰세카 문서’로 촉발됐다”고 설명했다. ‘모섹 폰세카 문서’란 파나마에 있는 대형 법무법인 ‘모섹 폰세카’의 비밀장부를 담은 하드 드라이브가 국제탐사보도 컨소시엄(ICIJ) 측에 넘겨진 뒤 천문학적 규모의 돈세탁 범죄가 드러난 사건이다. BBC에 따르면, ‘모섹 폰세카 문서’가 언론에 공개된 뒤 도이체 방크의 주가는 3% 이상 떨어졌다.

    도이체 방크가 범죄와 연관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2018년 9월 덴마크계 은행의 에스토니아 지점에서 러시아 비자금이 세탁된 사실이 드러난 ‘단스케 뱅크 사건’, 2017년 모스크바, 런던, 뉴욕 지점을 이용해 러시아 고객의 돈세탁을 해주려다 미국과 영국 금융 당국으로부터 6억3000만 달러(한화 7452억 원)의 벌금을 맞은 일, 2007년부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전까지 부실한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 유동화 증권(MBS)을 판매한 혐의로 2016년 9월 미국 법무부로부터 140억 달러(한화 16조5620억 원)의 벌금을 맞았다가 협의 끝에 72억 달러(한화 8조5170억 원)을 물어준 일 등 적지 않은 범죄와 연관이 돼 있다.

    때문인지 2010년만 해도 프랑스 BNP 은행에 이어 자산 규모 세계 2위이던 도이체 방크는 날이 갈수록 규모가 쪼그라들어 2017년에는 세계 17위, 2018년에는 63위로 추락했다. 시가총액 또한 1위 은행 JP모건의 100분의 4로 쪼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