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의사표현의 자유 침해"… KBS 통합뉴스룸 기자들, 보도본부장 정면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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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허위보도'라고 지적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막고 제작진의 '반박 입장문' 발표를 유보시킨 행위가 정당한 업무지시였다는 내용의 KBS 보도본부장의 입장문이 공개돼 내부 반발을 사고 있다.
- ▲ KBS 1TV '시사기획 창 - 복마전 태양광 사업 편' 방송 화면 캡처. ⓒKBS
"입장문 유보, 재방송 불방 결정은 정당했다"
김의철 KBS 보도본부장은 지난 26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시사기획 창 관련 입장문'에서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21일자 브리핑 직후 '시사제작국 창' 제작진이 '입장문'을 준비했던 것은 사실이나, 보고 과정에서 보도본부장과 시사제작국장은 방송 내용과 입장문 가운데 사실 관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판단해 최종 확인될 때까지 입장문 발표를 유보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더불어 '복마전 태양광 사업' 편 재방송 불방도 이와 같은 과정에서 결정됐다고 밝힌 김 보도본부장은 "입장문 유보와 재방송 불방 결정은 보도본부장의 정당한 업무지시였다"며 "일체의 내·외부 압력 행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입장문이 공개되자 KBS 통합뉴스룸 기자들은 27일 기명 성명을 내고 "태양광 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친 '시사기획 창' 방송에 대한 보도본부 수뇌부의 대처가 안일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며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제작진 입장 발표' 막는 게 본부장 업무 권한?
통합뉴스룸 기자들은 "언론사라는 조직이 내부 의사표현의 자유를 막아버리는 사이, 청와대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듯한 묘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취재 과정에서 제작진은 청와대에 수 차례 확인을 했다고 밝혔는 데도 보도본부 수뇌부는 청와대와 연락한 적이 없다며 사실상 최고 권부를 두둔하고 보호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도본부 수뇌부가 '청와대 외압'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막아 제작진의 민주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강조한 기자들은 "권력의 부당한 압박과 압력·개입에 굴종한 의혹도 씻을 수 없다"며 "제작진이 보도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 있게 밝혔는 데도 재방송을 슬그머니 대체편성해버렸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고 질타했다.
기자들은 "특히 보도본부장은 '제작진의 입장문에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보류를 지시했고, 재방 불방을 편성에 요청한 것은 정당한 업무지시였다'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제작진의 입장문 발표를 막는 게 본부장의 정당한 업무 권한인가? 백번 양보해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송을 냈다면 수뇌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날을 세웠다.
기자들은 "보도본부 수뇌부가 청와대의 압력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은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서 제작진을 폄훼하는 언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수뇌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한 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길 바란다"고 수뇌부를 압박했다.
이어 "이 엄중한 상황에 진상조사가 우선이라면서 물타기에 나서는 민노총 소속 특정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뒷짐만 지고 침묵하는 기자협회 집행부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고 밝힌 기자들은 "어떤 국민도 이 정권에게 법률을 무시하고 언론에 외압을 가해도 된다는 특권을 주지 않았음을 명심하기 바란다"며 공영방송에 대한 부당한 외압과 간섭을 멈출 것을 청와대에 요구했다.
靑 "정정보도 요청"… KBS 사장 "받은 적 없다"
앞서 '시사기획 창'은 지난 18일 방영한 '복마전 태양광 사업' 편에서 "수상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는 범정부 차원 TF에서 저수지 수면의 몇 %를 태양광 패널로 덮을지를 놓고 고민하다 '대통령이 60% 덮은 데를 보고 박수를 쳤다'는 전언이 나온 뒤로 '제한 면적'을 풀어버리더라"는 최규성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의 발언 등을 가감없이 전하며 '협동조합 태양광 사업'과 청와대·친정부 인사들과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윤 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태양광 사업 의혹의 중심에 청와대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는데 이는 허위 사실에 근거한 보도로,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을 내놓자,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24일 기명 성명을 통해 "청와대의 '외압'으로 인해 예정됐던 '태양광 사업 복마전' 편 재방송이 결방되고 자신들의 '반박 성명'마저 막힌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사실상 '외압'으로 간주되는 '청와대 브리핑' 직후 자신들의 반박 입장 발표가 유보됐다는 제작진의 주장이 공개되자, 양승동 KBS 사장은 26일 열린 정기 이사회에서 "청와대가 브리핑을 통해 입장을 밝히기 전, 공식적으로 사과방송 및 정정보도를 요청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제작진 입장 발표가 유보된 건 '추가적으로 몇 군데 사실관계를 확인할 부분들이 있어 입장을 유보하는 게 좋겠다'는 보도본부장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재방송도 이에 따라 보류한 것으로 보도본부장에게 보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KBS공영노동조합 관계자는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시사기획 창이 방송된 후 KBS에 정정보도와 사과방송을 요청했으나 사흘이 지나도록 KBS 측에서 대답이 없었다'며 공개적으로 브리핑까지 했는데, KBS 안에서는 사장과 본부장, 국장 등 책임자 모두가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방송 내용에 대해 소송이 제기되지도 않았고 오류가 밝혀진 것도 없는데, 청와대 수석이 사과하라고 요구하니까 스스로 알아서 계획된 재방송도 결방시키고 제작진의 반박이 담긴 입장문까지 막은 셈"이라며 "보도본부장과 편성본부장은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즉시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