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의친왕의 별궁 '성락원(城樂苑)'이 23일 일반에 공개됐다. 성락원은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한국식 정원이다. 성락원 관계자는 "도심 속 한국 전통 정원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개방을 결정했다"며 "이번 개방을 통해 복원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 ▲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성락원'이 4월 23일부터 6월11일까지 일반에 임시 개방을 진행한다.ⓒ정상윤 기자
-
- ▲ '성락원'전원에 위치한 '쌍류동천' 같은 하늘 아래 흐르는 두 물줄기를 뜻한다.ⓒ정상윤 기자
성락원의 거대한 철문을 넘어서면 녹음이 우거진 풍경이 나온다. 성락원의 '전원(前苑)'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성락원은 '전원', '내원(內苑)', '후원(後苑)' 총 세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전원의 우측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바위에는 '쌍류동천(雙流洞天)'이라는 각자(刻字)가 눈에 들어온다. 쌍류동천은 '같은 하늘 아래 흐르는 두 물줄기'를 뜻한다. 작자는 알려지지 않으며 1800년대에 음각(陰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희 문화해설사는 "현재는 한쪽이 담벼락으로 막혀있지만 본래는 후원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성락원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어 "(일부 변형이 된 건) 아쉽지만 서울 시내에서 한국 전통식 정원을 만날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라고 전했다. -
- ▲ '용두가산' 용의 머리모양을 한 인공 산으로 성락원의 내원과 후원을 전원과 분리한다.ⓒ정상윤 기자
전원의 좌측에는 용두가산(龍頭假山)이 있다. 용두가산에 가려 전원에서는 내원과 후원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용두가산을 둘러 내원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는 자연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박중선 한국가구박물관 기획총괄 이사는 "일보일경(一步一景)이라는 한 걸음 걸을 때 하나씩 보인다는 한국 전통 건축의 가치를 담은 것"이라고 전했다. -
- ▲ 자연에 인공을 가미한 '영벽지'는 한국 전통 정원의 가치를 잘 살렸다.ⓒ정상윤 기자
내원으로 들어서면 인공을 가미한 연못 '영벽지 (影碧池)'가 있고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장빙가(檣氷家)'라는 글이 쓰여있다. 장빙가는 '겨울에 고드림이 매달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영벽지'는 자연의 모습과 인공이 적절하게 조화된 한국정원의 특징을 볼 수 있다.박 이사는 "풍수에 보면 '비보'라는 것이 있다. 자연이 넘치면 덜어내 주고, 모자라면 돋아준다. 그 과정에서 인공이 절대로 자연을 넘지 않는다"고 한국 전통 철학에 관해 설명했다.
-
- ▲ '송석정'은 배산임수의 명당에 위치해있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옛 선비들의 전원에서의 삶을 느낄 수 있다.ⓒ정상윤 기자
박 이사는 "인간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것을 내 안목과 부지런함으로 내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담는 것이 한국의 집과 정원"이라며 "성락원 역시 물질적으로 화려하게 꾸민 공간이 아닌 정신적으로 꾸민 공간"이라고 전했다.
내원을 지나 후원으로 이동하면 1953년에 지어진 '송석정(松石亭)'을 볼 수 있다. 박 이사는 "경회루의 모습을 본떠 지어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송석정은 소나무가 많이 심겨있어서 정해진 이름이다.
-
- ▲ '성락원' 후원에서는 탁 트인 시야로 남산을 바라볼 수 있다.ⓒ정상윤 기자
후원 앞으로는 확 트인 시야로 남산을 바라볼 수 있다.
박 이사는 "남산을 향한 시야와 뒤에는 북한산을 두고 앞에는 물이 흐르는 이 곳은 남향과 배산임수라는 전통적인 '명당'자리"라고 전했다.
후원에는 송석정 앞에는 '송석지'라는 큰 연못이 있다. 현재는 콘크리트로 막혀있지만 복원 공사 후에는 한국 전통을 최대한 살려 자연과 어우러진 다리 등으로 바뀔 것으로 전해졌다. 인위적으로 막아 둔 부분이 사라지면 송석정 뒤편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내원까지 이르는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이사는 "한국 전통 정원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전했다. -
- ▲ 의친왕의 별궁'성락원'은 서울 도심 속 한국 전통의 가치를 지킨 정원이다.ⓒ정상윤 기자
성락원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왕'의 별궁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 의친왕이 기거하던 공간은 남아있지 않지만 의친왕의 딸 왕녀 이해경의 저서 '마지막 황실의 추억'에 등장한다. 성락원 뒤편에 있던 약수터 물은 대한제국 황실의 약수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200년간 베일에 갇혔던 성락원은 1992년 사적으로 등록 후 2008년 명승으로 변경됐다. 현재는 복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성락원'이라는 명칭은 故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이 '서울 도성 밖에 낙원이 있다'는 의미로 지었다. 최초의 기록은 조선 철종 당시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웅이 별서정원(세속에서 벗어나 전원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기 위해 만든 정원)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성락원은 1950년 4월 심 회장이 매입한 뒤 아들 심철 씨가 소유하고 있다. 성락원 측은 "심상웅 대감의 후손인 심상준 회장이 매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복원 사업 완료 전 진행되는 이번 임시 개방은 4월 23일부터 6월 11일까지 진행된다. 매주 월, 화, 토에 진행되는 관람은 사전 예약을 통해 매시간 최대 20명의 관람객만 받는다.성락원 측은 "지난 토요일 이미 5월 말까지 모든 예약이 끝났다. 안전의 문제도 존재하지만 한국 전통 정원은 무릇 군중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선비 한 명이나 또는 친구 한 명을 모셔 고즈넉함과 정신적인 공간으로 사용했다"며 전통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관람 인원에 제한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번 임시개방에서 성락원의 고즈넉함을 즐길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복원화 사업이 완료된 후 이르면 내년 가을쯤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