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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날, '자유시'의 급수탑은 피로 물들었다

[버림받은 역사, 자유시를 가다 ①]1921년 6월, 소련 赤軍의 무차별 총격… 독립군 수백명 사살

입력 2019-01-30 14:51 | 수정 2019-02-03 10:14

▲ 러시아 시베리아 한 가운데에 있는 '바이칼 호수', 성스러운 바다라 불리는 초대형 호수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시베리아의 한가운데 바이칼 호수가 있다. ‘성스러운 바다’라 불리는 초대형 호수. 횡단열차로 4시간을 달려야 통과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 불리는 이 호수 바로 옆에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가 있다.

2019년 1월 1일, 이르쿠츠크에서 시베리아를 가르는 횡단열차에 올랐다. 두 번의 밤과 세 번의 아침을 지나며 50시간을 달렸다. 그렇게 아무르주에 위치한 작은 시골마을 스보보드니에 도착했다. 6만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100여 년 전만 해도 스보보드니의 이름은 알렉세예프스크였다. 볼셰비키 세력인 러시아 적군이 이 도시를 점령한 뒤 갖게 된 이름이 스보보드니다. '자유로운'이란 뜻이다. 러시아의 옛 도시 알렉세예프스크가 스보보드니, 곧 '자유시'가 된 사연이다.

자유시에서 차를 타고 5분쯤 달리면 체스노코프(Mihailo -Zenokovskaya)역이 나온다. 체스노코프역에서 육교를 건너면 3층 건물 높이의 팔각 탑이 우뚝 서 있다. 스보보드니 전역에 물을 공급하는 대형 급수탑이다. 급수탑은 100년 전 이 도시의 랜드마크였다. 지금도 이 급수탑은 마을에서 가장 높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 전역을 휩쓴 후 가난 때문에 도시가 박제된 탓이다.

▲ 러시아 아무르주에 위치한 '스보보드니(자유시)'에 있는 급수탑. 1921년 6월 28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단 등 항일무장세력이 레닌 적군의 공격으로 학살당한 곳이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추위가 맹렬하던 1월 초, 렌트 차량에서 내려 철길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멀리서만 보이던 급수탑이 회색의 육중한 몰골을 드러냈다. 순간, 석양의 붉은 빛이 급수탑을 휘감았다. 드넓은 평야 위로 외롭게 솟은 급수탑, 탑 위로 끝없이 펼쳐진 붉은 노을―. 

100년 전 그날도 자유시의 대형 급수탑엔 붉은 노을이 피었을까. 어쩌면 진한 핏빛 노을이…. 

그날, 스보보드니의 대형 급수탑 아래에선 비극이 벌어졌다. 있어선 안 되는 대살육, 피의 잔치가 있었다. 땅과 하늘이 모두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던 날이었다. 1921년 6월28일의 일이다.  

이날 오후 4시께 소련 적군(붉은 군대)의 30여 문의 기관총이 경박한 굉음을 내며 독립군 진지로 발사됐다. 총포 소리가 스보보드니에 집결했던 대한독립군단의 대열을 일시에 흩뜨렸다. 스보보드니 수라세프카역 급수탑 아래 광경이었다. 진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역사는 이 사건을 '자유시 참변'이라고 부른다. 무장한 소련 적군과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오하묵의 자유대대(이르쿠츠크대대)가 결합해 우리 독립군을 집단 학살한 날이다. 

이날, 급수탑 아래 독립군 진지 양옆으로 무장한 소련 적군과 고려공산당 오하묵의 자유대대가 포진했다. 진지 앞뒤로는 철로와 강이 늘어져  사방이 막혔다. 독립군이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 1989년 8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자유시 참변 현장 약도'. ⓒ캡처

한쪽에선 소련 적군 갈란다시빌리 사령관이 이끄는 기마부대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전설적인 빨치산 갈란다시빌리 부대는 흙먼지가 이는 사이를 틈타 독립군을 쓰러뜨렸다. 반대편에선 적군 장갑차 부대가 돌진했다. 무장해제한 독립군과 일부만 무장한 박일리아의 니항군(사할린의용대)을 중앙으로 몰아 한꺼번에 사살할 요량이었다. 독립군 몇 명이 제(Zeya)강 쪽으로 내달렸다. 기관총이 발사됐다. 

대한독립군이 잔디가 듬성듬성 난 땅으로 고꾸라졌다. 창자·머리·허리 등 독립군의 사지에서 솟구친 피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흘러들었다. 총포에 맞은 이들의 외마디 비명과, 이들의 귓가를 끈질기게 쫓는 소련 모기떼의 윙윙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이날 독립군에겐 반격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독립군은 '신식 무기를 제공할 테니 무장해제하고 스보보드니로 집결하라'는 소련 적군의 요구를 성실히 이행한 상태였다. 니항군은 어제까지 일본군을 향했던 동지들의 총구가 오늘 자신들을 향할 것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 러시아 '스보보드니'의 제야강이 추위에 꽁꽁 얼었다. 자유시 참변 당시 적군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던 독립군이 살기 위해 뛰어들었던 곳이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독립군 수십 명은 살기 위해 뛰었으나, 몇 명은 소련 기병의 추격에 몸이 으스러졌다. 남은 자들이 온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또 달려 도착한 곳은 1km가량 떨어진 제야 강가였다. 차마 동족과 총부리를 겨눌 수 없던 이들이 물살이 빨라 강물이 말갈기처럼 솟아오른 제야강으로 몸을 던졌다. 더러는 스스로 강물을 폐로 들이켜 자결했고, 더러는 물살을 가르는 적군의 기관총에 맞아 죽었다. 강물 위로 피어오른 핏물이 물길을 따라 빠르게 번져갔다. 

기록에 따르면 소련 적군과 이르쿠츠크파 오하묵 자유대대의 공격으로 독립군 270여 명이 사살됐다. 31명이 익사했다. 250여 명은 행방불명됐다. 970여 명은 포로로 끌려가 소련 볼셰비키혁명군으로 편입됐다. 사상자의 규모는 기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모든 기록을 동일하게 관통하는 사실이 있다. 

이날, 독립군은 처절하게 와해했다. 

급수탑 아래서 100년 전을 떠올린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12명의 '자유시 참변 청년역사기행단'원 모두 그날의 대한독립군단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수많은 상념이 스쳐 갔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라 하여 나라가 떠들썩한데, 자유시 참변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엔 누가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까. 그때 다시 오면 이곳도 조금은 달라져 있을까. 

약소국 독립군으로 살다 타국땅에서 동지라 믿었던 이의 손에 살해당한 이들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짧은 묵념 후 눈을 뜨니 급수탑 주변에서 털모자와 털옷을 입은 러시아인 몇 명이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독립군의 참변을 알리는 흔한 비석 하나 없는 이곳, 대한민국인의 역사가 숨쉬던 곳임을 알 턱이 없는 러시아인들의 호기심은 당연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기행문 작성을 위해 자료를 찾기 시작하면서 1989년 8월15일 <동아일보>에 실린 '자유시 참변 현장 약도'를 찾았다. 스보보드니에서 봤던 풍경과 약도가 겹쳐졌고, 급수탑 아래 모여 있던 대한독립군의 모습이 그려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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