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13만건 청원...‘나경원 파면’ 등 ‘인민재판 창구’로 변질 비판도
  • ▲ 청와대 전경.ⓒ뉴데일리DB
    ▲ 청와대 전경.ⓒ뉴데일리DB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개설된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 수가 시행 6개월 만에 13만 건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국민과의 직접 소통’이란 순기능을 강조하면서 ‘실명제 전환’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견해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반론도 거세다. 게시판 개설 취지와는 다르게, 자신과 정치적 견해 혹은 지지정당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의 장으로 변질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형사 항소심 심리를 맡은 재판장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처럼, 이 제도가 ‘인민재판 혹은 마녀사냥을 위한 창구로 변질됐다’는 우려도 크다.

    2일 방송인 낸시랭은 자신의 SNS에 "어이없다는 말조차 가치 없다고 판단되지만, 유사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적 조치를 진행하겠다. 당당하게 실명도 공개 못하는 비겁한 방식으로 표적몰이를 하는지...오지랖은 대한민국 대표 훈장감"이라며 자신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앞서 지난달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낸시랭을 추방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낸시랭씨가 배우자의 성범죄 사건에 대해 잘못된 판결이라며 대한민국 사법부 근간을 흔들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지난해 8월,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에 따라 문을 열었다. 30일간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 답변을 내놓는다. 하루 평균 약 600여건의 새 청원글이 올라올 만큼 반응이 폭발적이다. 

    현재까지 답변이 완료된 청원은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자에 대한 중형 선고, 초중고 페미니즘교육 의무화, 정형식 판사(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장) 파면 및 특별감사, 가상화폐 규제 반대, 조두순 출소 반대, 주취감형 폐지 등 10건 이다. 

    답변 대기 중인 청원에는 나경원 의원 평창올림픽 조직위원 파면, 국회의원 급여 최저시급 책정, 포털사이트 네이버 수사,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 폐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선수 자격박탈 등이다.

    청원 내용 중 상당수가 3권 분립의 원칙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반하는 내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국회의원 급여 최저시급 책정’처럼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청원도 있지만, 나경원 의원 파면, 일간베스트 폐쇄 등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인민재판식 청원도 눈에 띈다. ‘가상(암호)화폐 규제반대’는 청와대 답변 여부를 떠나 전형적인 ‘민원성’ 청원이다. 

  • 사정이 이렇다보니 청와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권한 밖의 청원이 많기 때문에 답변도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달 22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내용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도 지난달 21일 '11:50 청와대입니다' 라이브 방송에 나와 “청원 게시판이 분노의 배출창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청와대가 입법기관이 아니어서 모든 것을 해결해드릴 순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그럼에도 소통은 가야할 길”이라며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일부 견해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화면 캡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화면 캡처

    정치권에서도 국민청원의 역기능 해소를 위해서는 청와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지난달 22일 "청와대가 원론적 답변만 내놓고 있는 사이 청원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간다"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일부 유명인은 '집단 린치'를 당하고 있다”며, “게시판 폐쇄 혹은 실명제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시판 이용자인 국민들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국민청원마저 문빠들 여론몰이에 사용할거면 폐쇄하세요" ▲"청원 할 자격이 없는 자에게 청원을 허락하는 것도 죄악" ▲"국민청원 게시판 전면 실명제로 전환해주세요" ▲"청와대 청원 게시판 폐지를 요청합니다" 등의 청원의 대표적이다. 

    국민청원의 역기능을 지적하는 청원 가운데는 "노짱(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활시켜 달라"는 내용도 있다. 이 청원을 올린 이는 “별의 별거 가지고 찡찡대는데 저도 청원 하나 합시다”라고 국민청원 게시판이 안고 있는 역기능을 꼬집었다.

    청와대는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게시판 운영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실명제 전환 역시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기능보다는 ‘소통’의 순기능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민사회 관계자는, 제도의 역기능을 외면하는 청와대의 태도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국민청원 게시판이 집단 린치 형식의 마녀사냥·인민재판을 위한 공간으로 변질됐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는 “취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해당 게시판이 제대로 된 역할과 작용을 하고 있는 지 판단해야한다”며 “국민청원이 ‘국민 신문고’와 겹치는 부분도 있으므로 이런 점도 고려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