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시장 봉고에 붙은 반기문 사진까지… 아이고, 참 대단하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달 12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며 "권력의지가 나라를 하나로 묶어 세계일류국가로 만드는 의지라면, 한몸을 불사를 각오가 서 있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그랬던 그는 지난 1일 "정치교체와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며 물러났다.

    20일 간의 대권 행보 동안 불길처럼 일어났던 '충청대망론'도 일단 사그러들었다. 반기문 전 총장이 학창시절을 보낸 고향 충주의 주민들은 어리둥절함으로부터 벗어났을까.

  •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본가인 충주 반선재에 놓인 방명록. 대통령을 하라 하지말라 마음을 비우라 말라 하며, 불출마 선언 직전까지 지상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충주(충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본가인 충주 반선재에 놓인 방명록. 대통령을 하라 하지말라 마음을 비우라 말라 하며, 불출마 선언 직전까지 지상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충주(충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외국인 찾는 반선재, 방명록에선 우리 국민끼리 아수라장

    반기문 전 총장이 금의환향(錦衣還鄕)한지 정확히 한 달이 되는 12일, 충주 무학시장 인근의 반선재(潘善齋)를 찾았다. 반기문 전 총장이 형제·남매들과 어린 시절을 보낸 본가(本家)다. '반기문의 선한 집'이라는 뜻의 명칭은 공모를 통해 붙였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일요일인데도 방문객들이 꾸준히 있었다. 휴가를 나온 듯한 병장과 여자친구가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외국인 여성 세 명도 곳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일부 친문(친문재인) 성향 네티즌들의 주장대로 반기문 전 총장이 해외에서 최악의 유엔사무총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 왜 외국인들이 찾아와서 기념 촬영을 하는지 의아했다.

    본가 앞에 놓인 방명록에는 반기문 전 총장이 귀국하기 직전부터 계속됐던 대권 도전 찬반 격론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대통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하지 말기를" 등으로 지상(紙上) 논쟁을 벌이던 방명록은 지난 1일 반기문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숨을 고르고 가려는 듯 일부러 비워져 있었다. 그 뒷장에서 다시 시작된 방명록은 전혀 딴판으로 차분해졌다.

    외국인은 10년간 국제사회를 위해 헌신한 유엔사무총장으로서의 모습에 순수하게 경의를 표한 반면, 우리 국민들은 그저 잠재적 대권주자로서의 반기문 전 총장만 바라보고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던 지난날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반기문 나오면 찍으려 했는데… 불출마 아쉽다" 한목소리

    이날 반선재와 무학시장, 충주역 인근에서 만난 충주시민들은 지난 1일 있었던 반기문 전 총장의 전격적인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한결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반선재 인근에서 만난 조모 씨(50대)는 "조금만 기다렸더라면 지지율은 다시 올라갔을텐데…"라며 "불출마를 다들 아쉬워한다"고 말했다. 충주역에서 만난 개인택시기사 노모 씨도 "나오면 찍어드리려고 했는데 너무나 아쉽다"고 털어놨다.

    반기문 전 총장을 '충주의 인물'으로 바라보려는 취재진의 질문에 경계를 보인 답변도 있었다. 무학시장의 모 순대국 식당 안주인은 "어디 충주시민들만 아쉽겠느냐"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똑같을 것"이라고 반문했다.

  •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본가 반선재 인근의 충주 무학시장. 시장 간판에서부터 반기문 전 총장을 내세우고 있다. ⓒ충주(충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본가 반선재 인근의 충주 무학시장. 시장 간판에서부터 반기문 전 총장을 내세우고 있다. ⓒ충주(충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언론이 반기문에게만 지적질" 불신 깊이 쌓여

    이들이 이날 보인 언론에 대한 경계심은 친문 성향 매체가 지난날 보여줬던 반기문 전 총장을 향한 음해성 보도와 맥이 닿아 있다. 충주시민들은 언론의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한 보도에 쌓인 불신이 극에 달한 듯 했다.

    순대국 식당에서 홀서빙을 하던 여성은 "언론이 반기문 총장이 뭘 하나 할 때마다 조그만 것을 커다랗게 키워서 지적질을 하더라"며 "우리나라는 언론의 지적질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다"고 성토했다.

    이 여성은 "아흔이 넘은 어머니가 아직까지 호수마을 아파트에 살고 있다"며 "10년 만에 귀국해서 아버지 묘소 가서 성묘하고 어머니 만나는 그 감동적인 순간까지, 퇴주잔 논란을 만들어내서 지적질을 하고…"하고 혀를 찼다.

    이른바 '반기문 턱받이 논란'을 향해서도 "봉사활동을 마치고 또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국민들 만나야 할 분인데, 죽이 묻으면 좋겠느냐"고 반박했다. 애초에 턱받이 자체를 스스로 맨 것이 아니라 꽃동네 신부에 매줬다는 지적에도 "총장이 맸으면 또 어떠냐"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언론이 논란거리로 만들었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조 씨도 "〈한겨레〉와 〈JTBC〉가 한창일 때 와서 다 찍어갔는데, 무학시장 봉고차에 붙여놓은 조그만 반기문 총장 사진을 가지고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더라"며 "아이고… 참 대단들 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민주당, 냉중에는 별별 소리 다 했을 것… 반기문 망쳐놨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위해 반기문 전 총장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친문 계열과 좌파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노 씨는 "민주당이 지금도 흠잡는데 냉중(나중)에는 별별 소리 다 했을 것 아니냐"며 "유엔사무총장이면 한 나라 대통령보다 대단한 것인데, 세계적인 인물을 자기네들이 다 망쳐놨다"고 미간을 찌푸렸다.

    순대국 식당 안주인도 "그분이 참 온화하고 선(善)한 분이라 (본가 명칭도) 반선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착하면 정치 못한다"며 "민주당은 문재인 때문에 그러는지 독하게 공격하던데, 선한 분이 그게 싫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 ▲ 충주 무학시장 내에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본가 반선재 가는 길을 알리는 간판. ⓒ충주(충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충주 무학시장 내에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본가 반선재 가는 길을 알리는 간판. ⓒ충주(충북)=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대통령됐더라면 충북 전체에 좋았을텐데……"

    어느 정도 경계심이 풀린 뒤, 충주시민들은 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로 간만에 찾아온 충북 발전의 계기가 사라질까봐 걱정을 솔직히 털어놨다.

    순대국 식당 안주인은 "여기 무학시장이 반기문 총장의 향수가 서린 곳이라지만, 사실 본가가 먼저 있었고 시장은 나중에 생겼다"면서도 "대통령 생가가 곁에 있었더라면 시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겠느냐"고 한탄했다.

    노 씨는 "대통령이 됐으면 충주 뿐만 아니라 충북 전체에 좋았을 것"이라며 충북의 퇴락상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는 "수안보는 호텔과 스키장이 전부 내버려졌다"며 "충주시가 이것저것 해보려 하고 있는데 시에 무슨 돈이 있느냐"고, 지역에서 '힘있는 인물'이 나와 국비를 끌어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조 씨는 "이종배 의원이 시장이던 시절에 기념관 부지를 확보해뒀는데 올스톱됐다"며 "경상도나 전라도에 가보면 논개 기념관 같은 것도 굉장히 거창하게 돼 있던데, 충청도에는 그렇게 예산을 가져올 사람이 없다"고 우려했다.

    ◆'충청대망론' 계승자는 안희정? 아직은…

    반기문 전 총장의 전격적인 대선 불출마로, 충북도민들의 꿈과 함께 한창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다 '빵' 하고 터져버린 '충청대망론'의 표심은 어디로 향할까.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충주시민들의 생각도 저마다 엇갈렸다.

    순대국 식당에서는 충북이 아니긴 하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순대국 식당 여성은 "안희정이 말도 잘하고 괜찮더라"며 "국민 모두를 아우를 수 있을 것 같더라"고 평했다.

    하지만 개인택시기사 노 씨의 진단은 달랐다. 노 씨는 "주변에서 안희정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대통령 선거에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민주당 경선을 거쳐야 하는 안희정 지사가 '문재인 산성'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 보는 듯 했다.

    노 씨는 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 이후 손님이나 주변 기사들의 반응에 대해 "찍을 사람이 없어졌다고들 한다"면서도 "안 찍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누군가 인물이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