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막을 보지 않아도 무방한 공연이 있다면 2막을 봐야 더욱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있다. 연극 '불역쾌재'는 후자에 속한다. 
    장우재 연출은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불역쾌재' 프레스콜에서 "경숙과 기지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2막에 나온다. 현실 문제에서 분별로 처리할 일이 있고, 넓게 포용해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다. 두 대감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런 관점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소개했다.
    '기지'는 과학자이며 엄격한 분별력을 지녔고, '경숙'은 예술가이며 인화와 포용을 강조한다. '기지' 역의 배우 오영수 역시 "2막에 가면 경숙과 기지는 대립이 아닌 통합을 이뤄내면서 하나의 지향점을 찾아간다. 이 연극이 보다 나은 사회구현을 위한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우재가 쓰고 연출한 연극 '불역쾌재(不亦快哉)'는 조선시대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관동만유(關東漫遊)'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왕의 스승이자 조선을 이끄는 정신적 지도자인 두 대감 '기지'와 '경숙'은 금강산 구룡연 외팔담 폭포 뒤로 동굴이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언쟁을 벌이다 결국 목숨을 건 내기를 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다.
  • 장 연출은 "제목 '불역쾌재'는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다산 정약용의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이라는 시를 우연히 읽고 '이거다' 싶었다. '이 또한'이라는 말은 어떤 사실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표현은 '즐겁다'이다. 이는 한 사건에 대해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그걸 거리를 두고 바라보자는 관점으로 사관이라는 인물을 설정했다.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가기 위해서는 화자의 필요성이 있었다"며 기지와 경숙의 금강산 여정을 기록하는 두 명의 '사관'을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1994년 김광보 연출의 '지상으로부터 20미터' 극작가로 대학로에 데뷔한 장우재는 2013년 '여기가 집이다'가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맞는다. 이후 2014년 '환도열차', 2015년 '햇빛샤워'와 '미국 아버지'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며 동아연극상, 차범석 희곡상, 김상열 연극상 등 최근 3년간 굵직한 상을 모두 휩쓸었다. 그는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인 이야기꾼으로 통하며, 전작들에서 현실비판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이번 작품에서 일부러 정치적인 의도를 담지 않았다. 핵심적으로 글을 쓴 이유는 1막에 나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슨 문제가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철학을 내세우고 답을 구해야 할 것인가. 이를 극복할 답을 고민하다보니 현실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빨려들어 온 것이다"고 말했다.

    '불역쾌재'에 출연하는 배우는 16명이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는 40여 명에 가깝다. 50년 넘게 무대를 지키며 100편 이상의 연극에 출연한 관록의 배우 이호재와 오영수는 각각 '경숙'과 '기지'로 분한다. 두 배우는 서로 티격태격하며 능숙한 완급조절로 작품을 이끌어나간다.

    경숙과 기지의 기이하고 유쾌한 여행 '불역쾌재'는 11월 6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 [사진=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