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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의 모든 출연작들을 거창하게 말하면 내 살과 피이고 청춘인 것 같아요. 인간 손예진과 배우 손예진, 둘을 놓고 본다면 배우 손예진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쉼 없이 달려왔죠."
배우 손예진은 영화 '연애소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청순가련한 모습으로 남심을 사로잡더니, '아내가 결혼했다', '무방비 도시'에서는 치명적인 섹시미를 발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작업의 정석', '오싹한 연애'에선 그녀만의 코믹 연기를 보여주며 귀엽고 사랑스러움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나쁜 놈은 죽는다'에서는 걸크러시 매력으로 꽉 찬 존재감을 드러냈다. 손예진은 한국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주인공 '여우비' 목소리를 맡아 처음으로 더빙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 안에서 드라마틱한 변신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손예진은 해가 지날수록, 작품을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있으며, 그녀의 연기 내공은 탄탄하게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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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예진이기에 가능했다
손예진은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냈다. 선거를 15일 앞두고 딸이 실종되면서 충격적 진실을 맞닥뜨리게 되는 정치인의 아내 '연홍' 역을 맡은 그녀는 모성애는 물론 나아가 광기 어린 감정 연기로 전에 없었던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극중 연홍은 딸을 찾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지만 주위에는 자신의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 때문에 아무도 믿지 못한 채 혼란스럽기만 한다. 자신의 편이라 믿었던 남편 '종찬'에게 마저 외면 받은 '연홍'은 딸의 흔적을 추적할수록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히며 극단적인 모성을 보여준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정확한 '연홍'의 캐릭터가 있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연홍과 감독님이 생각하는 연홍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았죠. 극한의 감정, 극적인 상황에 놓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많이 어렵고 힘들었어요. 감정부터 표현 하나까지 모든 것이 숙제였고, 최대한 연홍의 상황과 마음에 들어가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영화에서는 초반부터 딸이 실종되기 때문에 감정소모가 다른 작품에 비해 많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을 읽게 되는, 감정이 증폭되기 때문에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정상이 아닌 느낌으로 집착을 하게 되지만, '정상인 엄마는 이렇다'하는 것은 사실 없는 것 같아요. 정형화 돼 있는 우리의 시각일 뿐이고, 누구나 겪어보지 않았던 일들이기 때문에 '연홍'의 모습이 조금 더 광적으로 비춰진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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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결혼했다' 8년 후…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 8년 만에 부부로 재회한 손예진과 김주혁은 로맨틱한 이미지를 벗고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연홍'(손예진)과 달리, 자신 역시 딸의 실종이 충격적이지만 선거에서 지지 않기 위해 냉정함을 유지하는 '종찬'(김주혁). 두 사람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부부였지만 딸의 실종 후 극단적 갈등을 보이며 팽팽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주혁오빠와 부부로 만나는 인연도 힘든데, 두 번 다 비정상적인 부부여서 나중에는 좀 정상적인 부부로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어요. 8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웃음) '아내가 결혼했다'는 내용이 알콩달콩해서 재미있게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이번 작품은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했는데,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잘 통했죠. 이전에 같이 작품을 하지 않았다면 부부로 호흡을 맞추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더 빨리 동화될 수 있었어요."
"극중 남편(김주혁)의 따귀를 세 번 연속 때리고 침을 뱉는 장면이 나와요. 부담감이 컸죠. 조금만 호흡이 맞지 않으면 NG가 나기 때문에 서로 초집중했어요. 다행히 2번 만에 찍었어요. 실제 촬영 때 퍽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엄청 세게 때렸어요. 얼굴에 침을 뱉는 신은 그날 촬영장에서 아이디어가 나와 즉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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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손예진, 여전히 '~Ing'
충무로에 '여배우 기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20~30대 주연급 여배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배우가 없는 게 아니라, 남성 위주의 시나리오가 넘치나다보니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손예진의 약진은 눈에 띈다.
"여배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많지 않아요. 국내 개봉작이나 흥행 트렌드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 부분에서는 억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자 배우는 배우지만, 여자에게는 여배우라는 말을 쓰잖아요. 하지만 제작자의 입장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가 흥행이 잘 되고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면 계속 여성 중심의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요?"
손예진은 '나쁜놈은 죽는다', '비밀은 없다'에 이어 영화 '덕혜옹주'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덕혜옹주'에서 손예진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역을 맡아 허진호 감독과 '외출' 이후 10여년 만에 조우했다. 전작 '비밀은 없다'에서 모성애와 행복, 분노와 광기를 넘나드는 감정 연기을 선보였다면, '덕혜옹주' 속 손예진은 더욱 무르익은 연기와 깊은 눈빛으로 묵직한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연기로 더 보여줄 게 많은데, 언젠가 기회가 되고 준비가 되면 대본 작업이나 기획에 참여하고 싶어요. 배우들은 연기할수록 자기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거든요. 개인적으로 삶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델마와 루이스' 같은 두 여자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런 얘기를 몇 년 전 공효진 언니에게 말했더니 좋다고 하더라고요."
[손예진 인터뷰,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