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축사 대부분을 정태호 칭찬보다 정동영 공격에 할애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운전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였다.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는 10일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당내 중진들이 총출동했다. 재보선 지원 여부로 논란을 빚은 동교동계를 대표해 박지원 전 대표와 권노갑 상임고문도 참석했다.

    이 때문일까. 행사의 주인공이어야 할 문재인 대표와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추미애 최고위원, 정태호 후보는 정작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첫 축사를 맡은 문재인 대표는 "오늘 우리 당이 통째로 (이곳에) 옮겨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지원·권노갑 등 상임고문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는 등 예우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동교동계를 정면 비난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추미애 최고위원과 권노갑 고문 사이에서도 긴장된 기류가 감돌았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묘소 앞에서 분열의 결의를 하는 것은 왜곡된 모습"이라며 "지지 세력의 뜻을 받들고 챙기라는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동교동계 내에선 보궐선거 지원을 보류한다는 말도 한때 나도는 등 혼란이 야기됐었다.

    하지만 이날 마이크를 잡은 추미애 최고위원은 "평소 존경하는 권노갑 고문님"이라며 불과 이틀만에 꼬리를 내렸다.

    추미애 최고위원의 '백기투항'을 접수한 권노갑 고문의 축사는 위풍당당했다. 

    동교동계를 대표하는 좌장으로 참석해 정태호 후보 지원 의사를 밝혀야 했던 권노갑 고문은 정작 후보자 지원보다 2000년 정풍 운동의 주역이었던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를 비판하는데 열을 올렸다.

    권노갑 고문은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를 겨냥해 "우리 당에서 얼마나 키워줬나, 국회의원 시켜줬고 최고위원에 대통령 후보까지 했다"며 "우리 헌정 사상 대통령 후보가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나가는 일은 처음"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명분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나"라고 일갈했다.

    축사 전체 중 정태호 후보에 대해서는 "경험과 능력을 갖춘 사람" 정도의 기본 예우만 갖출 뿐이었다. 흡사 '친노(親盧) 정태호 후보가 좋아서 돕는다기보다는 정동영 후보가 싫어서 돕는다'는 뉘앙스로 읽힐 여지도 없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권노갑 고문이 결론적으로 '단합'에 방점을 찍은 축사를 마치자, 장내에선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긴장돼 보이던 의원들의 표정이 풀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이어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마이크를 넘겨받자 분위기는 한층 더 호전됐다.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태호를 아낌없이 돕겠다"고 화끈한 지원 의사를 밝힌 박지원 전 대표는 "골목을 찾아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나도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3시 반에 일정이 있어서 오늘은 먼저 가지만,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선대위 발대식에만 참여하고 미리 돌아가는 모습이 행여 친노와의 관계 문제로 비쳐질까 미리 노파심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표, 추미애 최고위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그제야 환한 미소를 보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지원 전 대표가 이처럼 지지 의사를 강조한 이유는 지지를 철회할 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확대 해석을 방지함과 동시에 문재인 대표와 있었던 모종의 정치적 타협에 못을 박기 위함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발대식으로 문재인 대표의 권좌가 불안정하다는 점이 방증된 셈"이라고도 했다. 발대식의 분위기가 권 고문과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따라 들썩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가 아직까지 혼자 힘으로 당을 움직이고 선거를 이끌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상황이다. 향후 동교동계의 심기 변화에 따라 보궐선거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만큼 문 대표가 어떤 식으로집안 관리를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