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통합 정치' 잠식하는 이분법적 치환美 사망세·오바마케어처럼 프레이밍 정치인가망국적 투기 vs 정의로운 세금 … 도덕적 대립헌재가 경계한 부담금의 조세화 … 법리의 허점엥겔지수의 역습 … 저소득층 겨냥 역진적 증세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K-스타트업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K-스타트업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언어의 수사(修辭)를 앞세운 '프레이밍의 전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제안한 설탕부담금을 실질적인 '설탕세'(Sugar Tax)로 규정하는 견해를 오는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증세 프레임'으로 규정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폐지에 따른 시장의 우려에도 '부동산 투기 옹호'라는 낙인을 찍었다. 취임 후 인사를 통해 '통합 정치'를 시도해 온 이 대통령이지만, 정책적 합리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분법적 정치 공방으로 치환하는 '프레이밍의 정치학'이 통합의 가치를 잠식하고 있다는 지적과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사망세' 논쟁의 재연 … 본질 가리는 용어의 정치

    2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과 정부에서 선택하는 용어는 단순한 명명을 넘어 여론을 가르는 강력한 수단으로 통한다.

    예컨대 미국 공화당이 1990년대부터 '유산세'(Estate Tax)를 '사망세'(Death Tax)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여론전의 교과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공화당은 "죽음에도 세금을 매기느냐"는 감성적 호소로 여론을 뒤집은 바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프랭크 런츠의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유산세' 폐지에는 49%가 찬성했지만, '사망세' 폐지에는 59%가 찬성해 10%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오바마케어'(ACA)를 둘러싼 명칭 논쟁도 정책의 본질보다는 진영 논리를 극대화하는 도구로 쓰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2010년 의료개혁법을 통과시키며 '환자보호 및 적정의료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으로 명명하자 공화당이 이를 '오바마케어'(Obamacare)로 부르기 시작했다. 

    2013년 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같은 법에 대해 '적정의료법'이라고 물었을 때 지지율은 45%로 가장 높게, '오바마케어'라고 물었을 때 지지율은 38%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전자는 법안의 긍정적인 목적을 강조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지지를 얻는 '브랜딩 효과'가 있었지만, 후자는 당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K-스타트업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K-스타트업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망국적 투기'와 '정의로운 세금' … 도덕적 이분법의 덫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SNS를 통해 부동산 다주택 규제와 설탕부담금을 향한 비판을 각각 '망국적 투기 옹호'와 '정치적 증세 프레임'으로 규정했다. 특히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에 따른 시장의 우려를 "나라가 망해도 좋다는 저급한 사익 추구 집단"의 선동으로 몰아붙인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정책의 기술적 부작용이나 실무적 보완점을 논의해야 할 공론장을 '선과 악'의 도덕적 전장으로 치환하는 전형적인 프레이밍 기법이다.

    국제 정치에서 상대 진영을 '절대 악'으로 규정해 내부 결속을 꾀하는 방식이 국내 정책 영역으로 전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야권을 향해 "부동산 투기 편을 든다"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적 접근 자체를 도덕적 결함으로 치환해 버리는 효과를 낸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설탕부담금도 같은 궤를 그리며 '언어의 전쟁'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자신이 제안한 설탕부담금을 일부 언론이 '설탕세 도입'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하자 즉각 SNS를 통해 "국민 의견을 물었을 뿐인데 '설탕세 도입'이라고 왜곡한다. 지방선거 타격을 주기 위해 증세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냐. 정확한 내용으로 수정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어 다음 날 오전 '설탕세' 도입을 비판하는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발언이 담긴 기사를 SNS에 공유하면서 "쉐도우 복싱 또는 허수아비 타법. 일반 재정에 사용되는 세금과 특정 용도를 위해 그 필요를 유발한 원인에 부과하는 부담금은 다르고 시행 방침과 의견 조회는 전혀 다른데도 '설탕세 시행 비난'은 여론 조작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전날에는 "성인병을 유발하는 설탕 남용을 줄이기 위해 몇몇 과용 사례에 건강부담금을 부과하고 걷혀진 부담금을 설탕 과용에 의한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씀으로서 일반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이자는 설탕부담금 제도"라며 "정치적 이득 얻어보겠다고 나라의 미래와 정의로운 건보료 분담을 외면한 채 상대를 증세 프레임에 가두려고 하는 무조건 반대나 억지스러운 조작 왜곡 주장은 사양한다"고 밝혔다.

    ◆헌재가 경계한 '부담금의 조세화' … '조세법률주의' 정면 충돌

    이 대통령은 "세금과 부담금은 완전히 다르다"며 법적 용어의 정의를 방어막으로 삼았으나 법리적으로도 이 대통령의 논리는 견고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정부가 '부담금'이라는 이름으로 조세법률주의를 우회해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헌재는 1998년 먹는 샘물 부담금 사건(98헌가1)에서 수질개선부담금의 정당성을 특정 제조업체에 대한 직접적인 집단적 책임이 입증돼야 한다며 부담금의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2004년 수입 먹는 샘물 부담금 사건(2002헌바42)에서는 먹는 샘물 수입판매업자에 대한 수질개선부담금 부과를 합헌으로 판단했다.

    다만 4명의 재판관들은 반대 의견을 냈다. 수입판매업자는 국내 지하수 자원을 이용하거나 훼손하지 않으므로 공공의 지하수자원 보호와 특별히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고 할 수 없고, 수돗물의 수질 개선의 과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일반적 과제에 속하므로 이에 대해 먹는 샘물 수입판매업자들에게 특별한 재정 책임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은 '설탕부담금'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설탕세' 해석을 '나라의 미래와 정의로운 건보료 분담을 외면한 정치적 이득 추구'로 정의했다. 이는 미국 공화당이 상속세를 '사망세'로 불러 여론을 주도한 프레이밍 전략의 '한국판 변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저소득층 부담을 가중하는 '정책의 역진성'이라는 경제학적 실질은 도덕적 수사 뒤로 숨겨졌다.

    그러나 설탕 과다 섭취와 성인병의 인과관계는 개인의 식습관과 가족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이를 특정 제조사나 소비자 집단의 책임으로 몰아 '지역의료 재원'이라는 일반적 재정 수요에 충당하는 것은 부담금의 헌법적 한계를 넘어선 '우회 증세'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권 일각에서 정부가 조세법률주의의 통제를 우회하고 있다는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K-스타트업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K-스타트업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방선거 프레임'에 숨은 엥겔지수의 역습

    가장 뼈아픈 대목은 경제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역진적 성격'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가구일수록 식료품비 비중인 엥겔지수가 높다. 설탕에 대한 수요는 비탄력적이라 설탕이 함유된 제품은 가격이 오르더라도 소비가 크게 줄지 않는다. 기업들은 설탕부담금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것이고, 결국 소비자가 그 비용을 떠안게 된다. 설탕 관련 가공식품 가격 인상은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을 즉각적으로 떨어뜨리는 '가혹한 세금'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법률적 용어인 '부담금'을 내세워 조세 저항을 부정하고 '설탕세' 프레임을 '지방선거용 공세'로만 치부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따져보면 설탕부담금은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가격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간접세이자 '역진적 증세'라는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칠레의 경고 라벨 의무화, 역진세 해소 방안으로 검토해야 

    다른 국가들도 세금 부과보다는 칠레식 영양 표시 강화 제도와 같은 비조세적 규제로 선회하는 추세다. 설탕세를 도입한 영국 등과 달리, 칠레는 2016년 설탕, 나트륨, 포화지방, 칼로리가 높은 제품에 검은색 팔각형 경고 라벨을 의무화하고 어린이 대상 마케팅을 제한하고 학교 내 판매를 금지하는 포괄적 정책을 시행했다.

    2024년 세계적 권위의 의학 학술지인 '플로스 메디슨'에 게재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의 글로벌공중보건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가당음료 구매가 초기 단계에 23.7% 감소했다. 이 감소량은 라틴아메리카 타 지역에서 시행한 가당음료 설탕세 등의 정책에서 나타난 결과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2019년 칠레는 식품의 영양 성분 기준치를 더욱 강화하고 TV에서 방영되는 건강에 해로운 모든 식품 광고에 대해 주간 시간대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이후 경고 라벨이 부착된 식품 및 음료의 구매량으로 추산한 결과 설탕 구매량이 36.8% 감소했고, 칼로리는 23.0%, 나트륨은 21.9%, 포화 지방은 15.7% 각각 감소했다.

    칠레 모델은 소비자에게 금전적 부담을 전가하지 않고 정보 제공을 통해 행동 변화를 유도한 사례로 '역진적 증세'의 근본적 대안으로 꼽힌다. 한국도 조세적 접근보다는 이처럼 정보 제공과 마케팅 규제를 통한 비조세적 개입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K-스타트업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 'K-스타트업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통합의 길 가로막는 프레임의 장벽

    더욱 우려스러운 지점은 비판 언론과 야권을 향한 거친 수사다. "언론이라면서 왜 망국적 투기를 편드느냐"를 비롯해 "정부 '억까'를 자중하라"는 식의 표현은 정당한 감시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에 대한 도덕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인사를 통해 외연 확장을 꾀한 이 대통령의 '통합 행보'가 정작 SNS 글을 통해 후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책 비판을 '국가 파괴 행위'나 '나라가 망해도 좋다는 저급한 사익 추구', '제도 속에서 하는 돈벌이'와 결부시키는 극단적 언어는 합리적 중도층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진영 간 골을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프레이밍의 정치학'은 당장의 지지층 결집에는 유효할 수 있지만, 정책 조정과 타협이 필수적인 국정 운영의 유연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인사로는 통합을 말하지만 언어로는 갈등을 조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설탕세 논란은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 현 정부 통치 스타일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