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십상시 회동’, ‘박지만 미행설’ 모두 박지만 회장에 보고
  • ▲ 청와대 문건 유출에 개입한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31일 오전 서울 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2014.12.31ⓒ 사진 연합뉴스
    ▲ 청와대 문건 유출에 개입한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31일 오전 서울 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2014.12.31ⓒ 사진 연합뉴스

    지난 연말정국을 뒤흔든 ‘정윤회 문건’은 시중에 떠도는 풍문을 과장해, 구속된 박관천 경정이 가공한 것이었으며, 정윤회씨가 사람을 시켜 박지만 EG 회장을 미행했다는 이른바 미행보고서는, 박지만 회장이 박 경정에게 사실확인을 요청하면서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박 회장의 측근을 통해 미행사실 확인 지시를 받은 박 경정은, 박지만 회장의 입맛에 맞게 미행보고서를 창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그의 지시를 받아 문건 작성을 주도한 박관천 경정은, 자신들이 만든 문건과 동향 정보를 박지만 회장에게 사실상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한달 보름 가량 청와대 문건 작성 및 유출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5일 이런 내용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응천 전 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구속),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가지고 나온 문건을 한화그룹 대관업무 담당자 등에게 유출한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한 모 경위를 기소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미완의 수사라는 지적이 많다.

    현직 대통령 동생은 물론 청와대 비서실을 혼란에 빠트린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 얼개는 드러났지만, 범행동기는 여전히 모호하다.

    검찰은 조응천 전 비서관이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하기 위해, 박지만 회장 끌어들인 것으로 추론했지만, 실체는 드러난 것이 없다.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범행동기와 관련돼 입을 다물고 있어, 소문만 무성한 비선실체 의혹은 또 다른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 ‘십상시’ 논란 불러온 ‘정윤회 문건’

    검찰은 구속된 박관천 경정이, 증권가 정보지(찌라시)를 비롯해 떠도는 풍문을 짜깁기해 ‘정윤회 문건’을 만든 것으로 판단했다.

    박 경정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를 받아 자신이 만든 문건을 박지만 회장에게 전달했다.

    의혹의 핵심이었던 ‘십상시’ 회동은, 관계자들의 통화내역 분석과 이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회동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비선그룹간 ‘권력암투’로까지 비화된 문제의 문건은 ‘허구’라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다.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동기와 관련돼, 2013년 말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으로부터 ‘비서실장 사퇴설’을 파악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김기춘 실장과 홍 전 수석은 서면조사에서 그런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십상시 회동’에 대해선, 모임장소로 지목된 강남 중식당을 압수수색하고, 정윤회씨와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의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 등을 추적한 결과, 사실무근으로 결론을 내렸다.

    박관천 경정이 ‘십상시 회동’ 제보자라고 주장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정윤회씨와 관련돼 구체적인 언급을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 미행설, 박지만 회장이 박 경정에게 확인 요청, 보고서는 박 경정이 꾸며낸 이야기

    십상시 파동에 이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박지만 미행설은 박관천 경정의 ‘창작소설’이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미행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경위가 드러난 것은 검찰 수사의 성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검찰은 2013년 말 박지만 회장이 지인으로부터 “정씨가 미행한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측근을 통해 박관천 경정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토록 요청하면서 문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했다.

    지시를 받은 박 경정은 경기 남양주 카페 주인을 등장시켜, 미행보고서를 만들었고, 보고를 받은 박지만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에서 전화로 미행설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3월 시사저널의 미행설 기사는 박 경정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박지만 회장이, 사석에서 지인들에게 보고서의 내용을 흘렸고, 이를 들은 지인 가운데 한 명이 시사저널에 제보하면서 나온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그러나 남양주 카페 주인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는 보고서는, 처음부터 사실무근의 내용을 박 경정이 창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경정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문건을 꾸며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 청와대 문건 유출, 당사자는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경위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문건을 외부에 유출시킨 당사자는 이날 불구속 기소된 한 모 경위와 자살한 최 모 전 경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 경위는 박 경정이 청와대를 나오면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보관해 놓은 짐 속에서 청와대 문건을 복사해 친분이 있는 한화그룹 대관업무 담당자에게 건넸으며, 세계일보에 그 내용을 유출한 사람은 자살한 최 모 전 경위라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다.


    ▶ 조응천, 박관천, 박지만 회장에게 문건 보고

    검찰은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자신들이 만든 문건을 박지만 회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의 지시를 받은 박 경정이, 박지만 회장의 측근 전모씨를 통해 문건을 전달했으며, 이렇게 전달된 문건은 모두 17건이다.

    조 전 비서관측이 박 회장에게 전달한 문건에는, ‘정윤회 문건’ 외에 ‘VIP 방중 관련 현지 인사 특이 동향’, ‘EG 대주주(박지만) 주식 일부 매각에 따른 예상 동향’, ‘VIP친척(박지만) 등과의 친분과시자 동향보고’ 등이다.


    ▶ 풀리지 않는 의문, 조응천과 박관천의 석연치 않은 범행동기

    허위문건 작성 및 유출과 관련돼, 검찰은 조응천 전 비서관이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정윤회씨를 견제하기 위해 박지만 회장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윤회 문건과 박지만 미행보고서 등을 통해, 박지만 회장을 자극하고, 박 회장과 청와대 비서진 사이에 갈등을 유도했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이다.

    그러나,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조 전 비서관이나 박 경정이 입을 다물고 있어, 정확한 실체 규명을 위해서는 검찰의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선 정계진출을 염두에 둔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회장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독직(瀆職)사건이란 견해도 나오고 있으나,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범행동기를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검찰은 유출된 청와대 문건 가운데 ‘정윤회 문건’ 등 10건을 ‘공무상 비밀’로 보고, 조 전 비서관을 공무상기밀누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허위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외부로 유출한 박관천 경정에 대해서는, 조 전 비서관에게 적용한 혐의 외에, 공용서류 은닉, 무고 혐의를 추가 적용해 지난 3일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청와대 비서진이 세계일보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과 정윤회씨가 시사저널을 고소한 사건,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윤회씨 간 맞고소 사건 등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