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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甲午年) 대남(對南) 통신사
남북관계 대(大) 바겐세일 임박?
기득권 세력의 현장 실사(實査)일 뿐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임진왜란(1592〜1597)이 일어날 즈음 조선(朝鮮)의 사정은 참담했다.
민생(民生)은 도탄(塗炭)에 빠지고, 조정(朝廷)에서는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려
당쟁(黨爭)으로 날이 밝고 해가 지고 있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대륙을 넘보자,
조선 조정은 일본의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2년 전(前)인 경인년(庚寅年:1590년) 통신사를
파견한다.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은 서인(西人), 부사(副使) 김성일(金誠一)은 동인(東人)이었고, 서장관(書狀官 : 외교문서에 관한 직무를 맡은 자) 허성(許筬)이 동행했다.
국정과 외교에 대한 당파 세력들 간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결국 대표 선수를 뽑아 현장 실사(實査)를 한 것이었다. 북한의 실세(實勢)들이 깜짝스레 왔다고 난리다.
북한군 총정치국장·국방위원회 부위원장 황병서, 노동당 근로단체 비서·국가체육지도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통일전선부장 김양건. 맞다 실세는 실세다. 각 언론에서 북한 최고 돈엄(豚嚴)의 사실상 특사(特使)라고 대서특필하면서 남북관계의 ‘대(大) 바겐세일’을 떠들고 있다.과연 그럴까?
글쎄 일면 그랬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최고 돈엄(豚嚴)이 전용기(轉用機)를 제공한데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와병(臥病)(?) 중에 있는 최고 돈엄(豚嚴)이 건재(健在)를 과시하려 했다고도 한다.
또 이런 얘기도 한다.
“김정은이 황병서와 최룡해를 같이 내려 보낸 것은 2인자 그룹에 여러 명을 두고
어느 한 사람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인의 ‘역할 분담론’도 거론되고 있다.
이들의 방문 직전(直前)까지와 방문 당일(當日)에도 대남(對南) 비방,
특히 우리 대통령에 대해 극렬한 욕설을 내 뿜은 작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모두 다 맞는 말일 수 있다. 상상은 자유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 최고 돈엄(豚嚴)을 비롯한 그 주변 세력의 속셈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사달이 벌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대(大) 바겐세일’만을 외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북한의 최고 돈엄(豚嚴)이 지 애비한테 권력을 넘겨받은 지 3년여가 되었다.
서른 살의 너무 잘 처먹는 버릇없는(어른들 앞에서도 담배를 건방지게 물고 있는) 애송이다.
며칠 전 부터는 다리를 저는 모습이 방송 화면에 생생하게 나왔다,
그 ‘조선중앙 TV’에. 그 할애비나 애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공식석상에서 수십일 째 사라졌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원쑤’ 미국은 물론 최근 ‘의리(義理)라고는 모조리 내 팽개친’ 중국에서 조차 정치적·경제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상황이 이러하니 이런 상상(?)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최고 돈엄(豚嚴)을 위시한 백도혈통(百盜血統)이 북녘의 권력과 인민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면, 왜 3명씩이나 내려 보냈을까? 남북관계를 개선해 보고자 한다면, 남쪽에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면 똘똘한 놈 한 명이면 족하다. 그런데 웬 세 명? 그것도 황병서와 최룡해가 과연 수직적인 관계인가? 정치적 라이벌 아닌가. 거의 망조(亡兆)가 들어 있던 조선의 ‘경인(庚寅) 통신사’ 두 명은 각 당파(黨派)의 대표선수였다.북녘의 최고 돈엄(豚嚴)은 맛이 간 듯하다,
이미.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북녘의 기득권(旣得權) 세력들은 이제 백도혈통(百盜血統)이 자신들의 안전과 부(富)와 영구(永久) 권력을 지켜주기에는 한계가 왔다고 본 것이다.
스스로 지키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동반(同伴) 몰락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 하에서 서로 간의 헤게모니 싸움을 일단 접어두고
앞날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직접 수괴(首魁)들이 같이 내려 왔다.
졸개 대표선수로는 성이 안차고 미덥지가 않았던 것이다.
남녘의 정세와 남녘 실세들의 생각을 직접 알아보고 판단해 보기 위해서...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反證)이다.
최고 돈엄(豚嚴)이 전용기(專用機)를 내 준 것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들의 수괴(首魁)들이 맘대로 사용한 것이다. 호가호의((狐假虎威)?
그럼 김양건이는 왜? 길 안내도 해야 하고, 남녘의 인물 식별도 필요하고.
그렇다, 대남통(對南通?)이니까. 그는 원래 북녘의 정치 실세가 아니라 그저 대남공작(對南工作)의 최고 기술자였을 뿐이다. 그러니 남녘에 와서 말 수가 많았던 것이다.
남녘의 반응을 듣고 양대 수괴(首魁)가 판단하도록 이런 저런 말들을 주워섬긴 것이다.결론은 북녘 최고 돈엄(豚嚴)이 특사(特使)를 보낸 것이 아니라,
양대(兩大) 기득권 세력의 수괴(首魁)들이 직접 현장을 실사(實査)한 것이다.
차후에 물론 최고 돈엄(豚嚴)이 다시 뒤룩뒤룩한 모습으로 “자 봐라!”는 듯이 쨘 하고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수양대군(首陽大君)과 김종서(金宗瑞)가 모시는 단종(端宗) 격(格)일 뿐이지 않을까.(물론 북녘 그 일당들의 성정<性情>이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하니 그 기득권 세력들의 수괴(首魁)들이 우리에게 보낼 메시지는
딱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골치를 앓고 있으니, 남녘 당국자들은 알아서 좀 참아 주쇼, 가당찮은 ‘통일(統一) 대박’ 어쩌구 하면서 흔들지 마쇼! 그러면 응분의 보답이 있을 거요.”
그리고 이어서 “그렇지 않으면 좋은 꼴 보기 힘들 거요. 우린 핵도 있고, 미사일도 있소. 한 방에 같이 가고 싶지 않으면 우리 입맛대로 해야 할거요!” 이런 협박성 회유(懷柔)는 앞으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때로는 개(犬) 우는 소리(떨어져서 짖거나, 만나서 짖거나)로, 때로는 맞짱뜨기(?) 모드로...필자의 상상대로 라면, 3명이 온 것은 그들의 뱃속과 현재의 처지를 얼마간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남북대화라는 미명(美名)하에 그저 만나서 개(犬) 짖는 소리나 들어야만 할 것인가?
항상 그랬듯이 막가파식 자해(自害) 공갈·협박을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위기(危機)는 기회(機會)와 함께 한다.
이제 어찌 잘하면 자유통일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철딱서니 없이 남북정상회담이나 5·24 조치 해제와 같은
바겐세일만을 섣부르게 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 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