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 중 끝내 결정 못내려, 변화 기류 감지...친박 좌장 서청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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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도장을 찍지 못했다. '클릭' 한번으로 가능한 '결재'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17일까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제출을 결정하지 않았다.

    5박6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까지 문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안 재가를 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빡빡한 현지 일정과 시차 등으로 임명동의안 관련 보고를 받는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까지 첫 방문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정상회담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이날 오후 2시부터 공식환영식을 가진 뒤 단독정상회담과 확대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양국 정상회담이 예정시간을 1시간25분이나 초과한 2시간10분가량 진행되면서 전체 일정이 지연됐다.


  • 갑자기 바뀐 기류, 朴대통령 마음 접었나?


    청와대의 임명동의안 서류 제출 시기 연장에 대한 해명은 큰 설득력은 없다.

    바쁜 일정과 시차 때문이라는 설명이 박 대통령의 현지 전자결재로도 가능한 동의안 제출을 부득이 미룰만한 타당한 이유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이미 개각을 모두 발표한 상황에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인 국무총리 임명에 대해서는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문창극 후보 총리 임명이 중대한 사안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제출이 예정된 일정에서 미뤄진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문창극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안 제출이 공식적으로 예정됐던 것은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해외 순방을 위해 출국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제출 시점으로 예상된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이는 왜곡된 친일 발언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문창극 후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며칠간 장고(長考)를 했다는 분석의 근거가 된다.


    문창극 후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다소 달라진 심경은 이날 친박 중의 친박 서청원 의원의 '문창극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청원 의원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사실상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지금은 문 후보자 스스로 언행에 대한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심각한 자기 성찰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잘 판단해야 된다."

    문 후보의 총리 내정 발표가 있은 10일 이후 새누리당은 줄곧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혀왔다. 때문에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의 이 같은 입장선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해외 순방 중 총리 인선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물리적 상황에서 서청원 의원의 입을 통해 뜻을 전달했다는 관측이다.

    서청원 의원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사퇴 요구를 발표하게 된 계기에 대해 "여러 곳에서 얘기를 들었고,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창극 사퇴를 압박하는 야당 주장은 물론, 청와대와의 교감도 있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 후보의 총리 임명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청와대가 갑자기 뜨뜻미지근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석연치 않다.

    문 후보에게 불거진 논란을 돌파하기 위해서 여론의 추이를 좀더 살펴보기 위한 [시간 벌기]라는 분석도 있고, 일각에서는 문 후보에게 불리한 약점이 청문회를 준비하는 야권에 의해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과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관계를 부정하다 박 회장과 찍은 사진 하나로 끝내 낙마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처럼 청문회 과정에서 문 후보의 추가적인 약점이 드러날 경우 청와대와 여당이 입을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 '끝까지 간다' 文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문창극 후보는 '끝까지 청문회를 돌파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아침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출근길에서 "국민의 여러 오해도 있었고 또 의원님들도 오해가 많으시고 하니까 그동안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제 심정을 솔직히 알려드리기 위해 열심히 (청문회를)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원님들도 오해가 많으시다]는 얘기는 여권 내부에서도 반발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서청원 의원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여권 내 문창극 반대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급기야는 '문창극 자진 사퇴설'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문창극 후보 측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오늘 임명동의안 제출은 예정대로 할 것"이라고 밝히는 다급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끝내 박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자 문 후보 측도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문 후보자 측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당초 예정한대로 이날 중으로 박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임명동의안 및 청문요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준비단 관계자는 "국회 의장실이나 의안과 등에 업무를 연장해줄 것에 대해 협조를 구하고 있으며 오늘 밤 9시나 10시까지는 기다려 꼭 제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또 퇴근길에서도 "인사청문회에 가서 국민들에게 우리 국회의원에게 당당하게 제 의견을 말씀드려 이해를 구하려 한다"며 자진사퇴 의사를 적극 부인했다.


    문제는 만약 박 대통령의 심경이 변한 상황에서도 문 후보가 끝까지 청문회를 고집할 수 있느냐다.

    문 후보 측은 청와대나 박 대통령 순방 수행단으로부터 "오늘 밤 늦게라도 재가가 날 것"이라는 답변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대통령이 의중을 드러낸 것도 아니고 이를 짐작할 정황이 나타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상황을 좀더 지켜보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