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FEMA, 日재난대응 부러워하는 언론·학계 "새로운 상설조직 필요", 진짜 필요한 것은…
  • ▲ 침몰하는 세월호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침몰하는 세월호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년 전부터 예견된 세월호 참사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55분,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한 청해진 해운 소속 카페리 ‘세월호’.
    사건 이후 열흘 동안 200여 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

    지난 열흘 동안 국내 언론들은 정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뉴스를 본 국민들도 여기에 동참했고,
    몇몇 정치세력은 “이게 국가냐”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비난의 초점은 청해진 해운에서 대통령,
    이어 총리,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 국방부 등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느 곳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게 언론들의 ‘주장’이었다.

  • ▲ 정부 당국자 뺨 때리는 세월호 승객 가족. [자료사진]
    ▲ 정부 당국자 뺨 때리는 세월호 승객 가족. [자료사진]

    하지만 이런 비난이 계속되는 동안
    일부는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 탓만 하면 될까”
    “해외의 경우에는 어떨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

    1993년 10월 서해 페리호 사고와
    21년 뒤 세월호 사고를 처리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거의 비슷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부와 전문가들이 수많은 조직 정비를 했음에도 왜
    참사 앞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걸까. 


    한국 언론들 “선진국의 경우에는 이런저런 조직을 갖추고…”


    이런 의문은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5일부터 몇몇 언론이
    해외의 재난관리기구에 대한 소개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연방위기관리청(FEMA)’을 필두로
    영국, 일본의 재난관리기구를 소개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탓인지
    대부분 해상사고 대응체계와 관련 기구들에 대한 소개들이었다.

    언론들은
    독일의 연방국민보호재난지원청(BBK),
    프랑스의 시민안전총국(DDSC), 영국의 전략적 조정그룹(SCG)과 같은
    ‘국가재난관리기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영국 해사연안경비청(MCA)과 왕실 연안경비대(HMCG),
    선박구난관리대표부(SOSREP),
    일본 해상보안청과 해난방지연락회의, 특수구난대 등
    해난사고를 전담하는 조직들을 상세히 소개했다.

    한국 언론들이
    이런 강대국들의 재난관리기구와 시스템을 소개하면서 강조하는 점은
    대부분 “정부가 별도의 상설 재난관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재난사고 시 해외 강대국들의 인명구조율이 높은 것은
    강력한 권한 덕분”이라는 주장이었다. 

    일부 언론들은 盧정권이 만들었던 NSC 사무처의 ‘위기관리시스템’을 거론하며
    “MB 정부가 NSC 사무처를 해산하면서 기능이 망가졌다”
    “MB 정부 때까지만 해도 있던 청와대 위기관리기능을 박근혜가 없앴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현 정부 공격용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 ▲ 2005년 뉴올리언스를 휩쓸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치안유지 활동 중인 주 방위군. [사진: 美인권단체 홈페이지 캡쳐]
    ▲ 2005년 뉴올리언스를 휩쓸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치안유지 활동 중인 주 방위군. [사진: 美인권단체 홈페이지 캡쳐]

    세월호 참사 뒤 살펴보는 강대국 재난관리, 핵심은….


    언론들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재난관리체계를 거론하며,
    국내 재난관리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여론은
    “강대국처럼 별도의 상설 재난관리청을 만들어
    참사 발생 시 인명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
    주로 대학교수들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강대국 재난관리 운영체계도 처음부터 높은 효율을 보인 게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연방위기관리청(FEMA)’과 일본이다.

    美FEMA가 처음 생긴 것은 1979년.
    이전까지 미국에서는 넓은 국토와 고르지 않은 인구분포 등으로 인해
    허리케인이나 홍수 등이 발생하면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이에 연방정부 차원에서 FEMA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FEMA와 美연방정부도 ‘전지전능’은 아니었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뒤
    美정부는 FEMA를 국토안보부(DHS) 산하로 편입시키고,
    테러 대응에 주력토록 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재난관리 경험이 전혀 없는 마이크 브라운을 FEMA 청장으로 지명했다.

    이후 2005년 8월 말,
    뉴올리언스 지역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쑥대밭이 된 뒤
    FEMA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 ▲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뒤 뉴올리언스의 모습. [사진: 美트린콜 대학 재난관리 과정 홈페이지]
    ▲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뒤 뉴올리언스의 모습. [사진: 美트린콜 대학 재난관리 과정 홈페이지]

    일본은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거대한 자연재해가 일어날 경우에
    만반의 대비를 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이런 자부심은 사라졌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세계에서 재난재해 대응을 가장 잘 한다는 두 강대국이
    재난재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현장 중심의 재난대응 원칙’과
    ‘1차 사고 발생의 원인 제공자를 대응활동에서 배제하지 못한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해 왔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에는 무능한 FEMA 지휘층이
    “허리케인이 오기 전에 제방을 빨리 보수해야 한다”는 현지의 의견을 묵살해
    허리케인과 홍수로 모든 게 떠내려가 버렸다.
    결국 연방정부가 주방위군을 투입한 뒤에야 주민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일본 도호쿠 지역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 때는
    일본 정부가 도쿄전력의 말을 더 신뢰하다
    중요한 국토를 ‘접근금지구역’으로 만들어버렸다.

  • ▲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장면. [사진: 조선일보 영문판]
    ▲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장면. [사진: 조선일보 영문판]

    재난재해 대응, 위원회 신설-조직개편으로는 안 된다.


    미국과 일본의 실패 사례에서 보듯,
    재난재해로 인한 피해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피해가 일어난 뒤에는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빠른 구조와 대응이 필요하다.
    그 바탕이 되는 게 바로 ‘현장에 전권(全權)을 위임한다’는 원칙이다.

    재난재해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사람,
    이어 해당 구조대의 현장 책임자가 요청할 경우
    지위고하를 따지지 말고 동원가능한 모든 자원을 보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1993년 10월 서해 페리호 참사를 겪은 뒤
    20년 동안 수많은 정부조직개편만 있었을 뿐
    국민들을 위한 예방조치나 훈련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입자마자 펴면 안 된다는 걸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비행기를 탔을 때 승무원들이 가르쳐주는
    구명조끼 입는 법을 외우는 사람도 거의 없다.

    초중고교에서는
    수영이나 재난재해 시 탈출방법 같은 건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
    응급처치 훈련도 희망자 극소수만이 간단하게 받을 뿐이다.

    안전에 대한 ‘개념’이 없다.

    과거 ‘민주화 정권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재난재해 대비나 생존훈련을 가리켜
    “군사정권의 냄새가 난다”며 아예 없애버린 덕분이다.

  • ▲ 민방위 훈련 당시 서울 미근초등학교 학생들의 '방독면 체험'. 극소수만이 이런 '체험'을 할 수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방위 훈련 당시 서울 미근초등학교 학생들의 '방독면 체험'. 극소수만이 이런 '체험'을 할 수 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군대라고 다르지 않다.

    군 의무병은 물론 군의관조차 대규모 재난재해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
    심지어 현재 군 의무부대에는 총상환자 등에 대응할 능력도, 필요한 장비도 없다.

    언론은 어떤가.

    재난재해 현장을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생중계’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논평’이나 내놓는다.

    지금 세월호 현장에서 온갖 음모론을 내놓으면서
    구조대를 비난하는 언론 가운데
    평소에 재난예방을 역설한 곳이 있기는 한가.

    정부와 정치권의 수준은 더욱 한심하다.

    과거 상설화되어 있던 민방위 본부를
    재난재해대책안전본부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바꾼 뒤
    ‘필요할 때만 구성되는 협의체’로 축소시켰다.

    盧정권이 만든 ‘국가비상기획위원회’는 아예 없애 버렸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재난재해 현장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청와대 지하 벙커나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재해대책본부에서
    스크린이나 쳐다보며 ‘현장을 지휘’한다.

  • ▲ 서울정부청사 본관 1층에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모습. 여기서 현장상황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사진: 안전행정부 블로그]
    ▲ 서울정부청사 본관 1층에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모습. 여기서 현장상황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사진: 안전행정부 블로그]

    세월호 참사처럼
    재난재해가 ‘선거철’과 겹치면
    정치인들이 위로한답시고 현장을 찾아,
    현장의 구조인력들에게 ‘의전’을 요구하며 방해한다.

    청와대 수준도 엉망이다. 단적인 예가 국가안보실이다.

    현재 몇몇 언론에서는
    盧정권 시절의 NSC야말로 제대로 된 재난재해 대책기구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전문가들이 NSC에 참여해 각종 매뉴얼을 만들어줬지만,
    막상 사고가 터지면 우왕좌왕하다 인명피해만 키웠다.
    NSC 자체가 ‘국가안보’ 보다는 ‘통일을 위한 대북협력’을 최우선으로 삼아서다.

    이명박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NSC를 없앴다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계기로 NSC를 되살려
    ‘국가위기관리실’로 확대개편했다.
    여기에서는 재난재해와 같은 위기관리도 맡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국가위기관리실’은 ‘국가안보실’로 확대 개편됐지만
    안보와 관련된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재난재해가 일어나도 ‘관찰자(Spectator)’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일부 언론들이
    “국가안보실은 대체 뭐 하느냐? 보고만 하면 되느냐?”고 지적했지만
    청와대의 대답은 “국가안보실은 재난재해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2013년 4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국회에 출석해 이런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국가안보실은
    안보, 재난, 국가 핵심기반시설 분야의 위기 징후에 대해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했다.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현장 지휘관이 ‘자원을 요청할 권한’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만 봐도 그렇다.
    해양수산부는 세종시에, 안전행정부는 서울에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현장 지휘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즉 우리나라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이 벌어졌을 때는
    구조활동을 돕는 자원보다 방해하는 세력이 훨씬 더 많다는 말이다.

  • ▲ 美연방위기관리청(FEMA)의 로고와 담당 권역.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이런 거대조직보다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사진: FEMA 소개자료]
    ▲ 美연방위기관리청(FEMA)의 로고와 담당 권역.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이런 거대조직보다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사진: FEMA 소개자료]

    언론들은 ‘전문가’와 ‘교수’의 입을 빌어,
    인명구조율 95%인 일본 해상보안청이나
    전국 10개 지청과 2,600여 명의 상근인력을 거느리고
    재난재해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美FEMA를 부러워하며
    “우리나라도 그런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재난재해 예방활동 강화와 함께
    사고 발생 시 우리나라와 같은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미국 등과 같은 ‘보톰-업(Bottom-Up)’ 방식의 대응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美FEMA의 경우 현장에서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군대까지 출동시켜 준다.
    백악관마저 그들의 말을 따른다.

    현장의 구조인력들에게 권한이 없다면,
    이런 참사가 또 일어날 가능성,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은 세월호 참사 전과 같다는 말이다.

  • ▲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활동 중인 민관군 구조대. 이들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
    ▲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활동 중인 민관군 구조대. 이들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정상윤 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