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오전엔 '시국선언'..오후엔 '밤샘 술파티'승가대 12기 동기들, 충남 불교 연수원서 음주-고성방가
  •  

    오비이락(烏飛梨落) :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아무런 관계도 없이 한 일이 우연히 동시에 일어나,
    마치 다른 일과 관계된 것처럼 남의 혐의를 받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불교계에서 두 가지 대형 사건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발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실천불교전국승가회·상임대표 퇴휴) 승려 1,012명은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 관련자 처벌과
    박근혜 정부의 사과 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 모인 승려들은
    "과거 개발독재 정권이 재현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수행자로서 무한한 책임감과 자괴감을 느낀다"며 정부 여당에 대한 쓴소리를 내뱉었다.

    엄숙하고도 고결한 모습으로 위정자(爲政者)들을 꾸짖는 모습은,
    발언의 [사실 여하]를 떠나, 추상같은 위엄(威嚴)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밤
    종단의 한 연수원에선, 대낮에 있었던 [고품격 시위]를 무색케 하는,
    질펀한 [음주가무 행사]가 벌어졌다.

    "조계종 주지급 승려들 연수원서 밤새 술판"

    <한겨레>는 3일자 보도에서
    "조계종의 주지급 승려들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돼 있는
    불교 연수원에서 밤새 [술판]을 벌였다"며
    승가대 동기들로 알려진 10여명의 승려들이 지난달 28일 밤
    충남의 한 불교 연수원 레크리에이션룸에서 다음날 아침 7시께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신 사실을 폭로했다.

    승가대 승려들이 누군가?

    자칭타칭 불교계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이다.

    저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승려들이 밤샘 술판이라니….

    술판을 벌인 승려들 중에는 3선의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도 있었고,
    여자 승려인 비구니들도 4명이나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에 따르면 이들 승려는 모두 중앙승가대 12기 동문들이었다.
    이날 밤 한국문화연수원에서 동기 모임을 가진 승려들 중
    12명 가량이 따로 남아 밤새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한 것.

    중앙승가대 12기는 중앙종회의원이 6명이나 되고,
    종단의 주요 요직을 차지할 정도로
    조계종 내에서도 막강한 위세를 떨쳐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발 후 연수원장직에서 해임된 초격 스님은
    <불교닷컴> 등 일부 언론과의 통화에서
    "동문 모임이어서 좀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앞으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해명했다.

    한 불교계 소식통은
    "스님들이 친목 모임을 가질때 [음주가무]가 동반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면서
    "이날 술자리에 참석한 이들만 맹비난할 것이 아니라
    종단 자체의 문화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8일 오전에 있었던 [시국선언]과
    늦은 밤 자행된 [음주파티]는 별개의 사건이다.
    겹치는 인물도 없고, 모임을 주도한 승려들도 전혀 다른 인물들이다. 

    그러나 고결한 품격으로 위정자들을 꾸짖던 스님들과,
    밤샘 술판을 벌인 스님들이 [같은 종단] 소속이라는 점은 매우 아쉽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은 쉽게 본다"는 말이 있다.

    이번 [음주 파문]을 계기로
    불교계가 남을 탓하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아성찰(自我省察)의 시간을 가져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