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채명신 장군은
    노령에도 청년층 및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대화나 강연을 쉬지 않고
    자신이 몸소 겪었던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교훈을
    전파했다. 
    작년 2월 13일
    한국안보문제연구소(KINSA 이사장 김희상)에서 열린
    강연을 수강한
    한국정책평가연구원 박경귀 원장이
    당시 강의 내용을 요약해 주변에 알렸었다. 
 
채명신 장군이 남긴 마지막 교훈을 다시 새겨본다.  


  • ▲ 채명신 장군 ⓒ
    ▲ 채명신 장군 ⓒ

    어제 저녁 한 작은 아카데미에서 채명신 장군의 강의를 들었다. 
    국방, 안보, 외교, 통일 분야 사회지도층 인사 20여분이 함께 둘러 앉아 듣는 편한 자리였다. 
    무려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열정어린 강의를 듣고 나서 20여 분 간 질의응답이 있었다.

    1926년생이시니, 만 86세의 노구이신데도,
    또렷한 목소리에 이야기도 재미있게 전개하시는 등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6.25전쟁 때는 연대장으로,
    한국군 최초의 유격부대인 백골병단 대장으로,
    월남전에서는 맹호부대장이자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몸소 겪은 6.25와 월남전의 에피소드와 교훈을
    차분하게, 때로 격정적으로 좌중에게 전달했다.

    그간 각종 언론 인터뷰나 신문 연재, 회고록 발간을 통해
    전쟁의 경험을 전해왔지만,
    양 전쟁을 경험한 군인이 거의 사라져가는 요즘에
    야전을 누빈 백전노장의 체험담을 육성으로 직접 듣는 것 자체가
    더욱 소중한 의미가 있었다.

    채장군이 강조한 내용들은 여러 가지였지만,
    관통하는 핵심 주제들은
    공산주의의 잔인성과 위험성에 대한 경고,
    인간 파괴의 전쟁의 참상,
    자유 수호를 위한 군인으로서의 용기,
    부하 사랑과 애민의 정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철학
    등이었다.

    채장군의 인품과 성격을 드러낸 몇 가지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그 중 하나가 소위로 임관되어
    처음 소대장으로 부임한 제주도의 군생활이다. 

    4.3사태의 와중에서 경험한
    군 내부의 좌익과 우익간의 갈등으로
    암살의 위협까지 느끼는 상황에서
    부하 사랑으로 얻어낸 신임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하들의 경호 속에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사례에서는
    적대적 부하까지 포용해서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헌신적 리더십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강조한 6.25전쟁의 교훈은 3가지이다.

    첫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이다. 

    당시 북한이
    6.25 이전부터 휴전선 부근에서 잦은 도발을 해왔었지만,
    6.25 전쟁에 임박한 즈음엔
    각종 평화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남한지도자와 군에서는
    저들이 전면전쟁을 일으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을 당했다고 통탄했다. 

    북한에 대한 경계를 한시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둘째, 동맹국과의 관계를 올바르고 굳건하게 유지해야 한다. 

    6.25전쟁 시 미국 등 혈맹의 도움이 없었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주변 강대국 사이에 있는 한국의 미약한 국력만으로
    국가를 유지하고 보전하기가 어려운 만큼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와의 동맹을
    굳건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의 한미 FTA 폐지 주장 등은
    한미간 경제적 상호국익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한미군사동맹의 균열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우려도 나타냈다. 


    셋째, 내부의 적을 경계하라.

    6.25전쟁의 발발 이전부터,
    제주 4.3사건, 여순반란 사건 등
    좌익의 준동이 북한의 오판을 불러왔고,
    월맹에 의한 베트남의 공산화도
    자유베트남의 부패와
    내부의 공산세력에 의한 자멸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특히 부패한 국가는
    위급할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명신 장군이 강조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조건, 두 가지도 의미 있다. 

    첫째, 

    전쟁의 대의명분, 즉 전쟁의 목적이
    정당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월맹은 ‘외세 배격’이라는 명확한 대의명분이 있었지만,
    자유베트남 정권의 경우
    월맹과의 전쟁에서 뚜렷한 목적이 없었기에 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리더가 누구이냐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월맹은 청렴한 지도자 호치민이 이끌었지만,
    자유베트남 정권은 사리사욕에 의한 잦은 쿠데타로 정정이 불안했고,
    부패한 지도자가 이끌었기에 패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강직하고 청렴하면서도 용감한 군인이었던
    그의 체험과 통찰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인지라 무게감이 더했다. 
    저녁 7시 30부터 10시 반이 되어서야 끝날 때까지
    기침소리 한번 내지 않고 몰입해서 강의를 들었다. 
    청중 모두
    노장에 대한 따뜻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배어나는 흐뭇한 안색을 서로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