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전 세계에 한국군의 용맹을 알린
    <채명신> 예비역 중장이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채명신> 장군은
    1926년 11월 27일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났다.
    해방 직후 한때 교편을 잡았으나,
    소련군에 의해 북한이 공산화되는 과정을 지켜본 뒤 월남,
    1948년 육사 5기로 임관했다. 

    임관한 뒤에는
    소대장으로 제주에 근무하면서
    <제주 4.3사건>의 희생자가 될 뻔 하기도 했다.

    6.25전쟁 때는
    2사단 25연대 중대장,
    7사단 5연대장,
    3사단 참모장, 22연대장을 맡아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채명신> 장군이
    6.25전쟁 중 세운 전공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백골병단]을 이끈 것.
    그의 유격대 [백골병단]은
    북괴군과 중공군 후방을 뒤집어엎으며
    적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후 5사단장,
    베트남 파병 한국군 사령관,
    2군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채명신> 장군은
    1965년 8월부터 1969년 4월까지
    첫 베트남 파병 한국군 사령관으로
    한국군의 용맹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채명신> 장군이 이끌던
    베트남 파병 한국군은
    이전까지 프랑스군, 미군이 해내지 못한
    [베트콩 씨 말리기]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채명신> 장군은
    장병들에게 민사심리전을 강조,
    베트남 주민들을 위해 각종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그들을 보호하는 한편,
    베트콩들이 시골마을을 협박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창안한 중대전술을 통해
    베트콩과 월맹군을 유인해 박살내는 전투로
    엄청난 전과를 계속 올려 세계를 놀라게 했다.   

    <채명신> 장군은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태극 무공훈장,
    화랑 무공훈장,
    3번의 충무 무공훈장,
    2번의 을지 무공훈장,
    국선장,
    방위포장 등을 수상했다.

    <채명신> 장군은
    중장으로 예편한 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스웨덴 대사, 그리스 대사, 브라질 대사를 지냈으며,
    대한해외참전전우회 명예회장,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회장,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다.

  • 5.16군사혁명에 동참했고,
    군의 초창기 영웅이었지만
    그가 남긴 재산은 용산에 있는 작은 집 한 채.
    이 마저도 <박정희> 대통령이 마련해 준 것이다. 

    <채명신> 장군은
    모든 공직을 그만 둔 뒤에는
    군과 안보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을 자택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채명신> 장군의 유족으로는
    문정인 여사(85)와 1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송파
    현대아산병원(1688-7575)에 차려질 예정이다.
    발인은 28일 오전,
    안장식은 같은 날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