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수,목 드라마(밤10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  (연출 강신효 /극본 김은숙) 16일 3회 방영분은 실망을 주고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견뎌라]는 거창한 제목에서 기대를, 아이돌을 대거 포진한데서 웬지 진부함이 느껴지는우려의 두 저울질 사이에서, 기대를 저버린 실망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고 말았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드라마 작가들은 무슨 목적으로 드라마를 쓸까? 단순히 작가로서의 성공,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인기와 시청률?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상업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생존도 절박한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뚜렷한 목적은 갖고 써야 하는 작가로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 작가 정도면 적어도 지식인  아닌가?

    지식인들은 많이 배운 것 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책임감을 갖고 있든 아예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든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눈에 뚜렷이 드러나는 범죄만 범죄가 아니다. 보통 범죄는 한 개인을 해치는 데 그치지만 (물론 사회적인 악영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들이 저지르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범죄의 영향력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죄에 비하면 엉청나고 지속적이다.

    [많이 가진 자에 대해 그만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처음에는 [재벌상속자]와 [가난상속자]의 대비가 그런 대로 눈에 들어왔다.
    헌데 곧 이어서 여기저기서 얼마 전에 빌려 입어 눈에 익은 옷이 보인다.

    재벌의 여자들, 본 부인과 첩들. 트랜드가 될까 겁이 난다.
    서로에 대한 적의가 가득하여 으르렁거리며 한 마디 말을 해도 비수가 꽂힌 말을 하며 허구헌날 같은 집에서 살고 얼굴을 수시로 맞대며 살 수 있을까? 


    첫번째 부인은 죽고 두 번째 부인은 같이 안 산다. 서류상 부인인 두 번 째 부인 지숙(박준금)은 대내외적으로 김원(최진혁)과 김탄(이민호)의 어머니이다. 제국그룹 회장인 김회장과 같이 살고 있지만 첩으로 존재감이 없는 무식한 김탄의 어머니 기애(김성령)는 지적인 지숙을 몰아내려고 하고 흥신소에다 지숙의 뒷조사를 부탁한다.

    압구정에서 갤러리를 하고 있는 고단수의 독한 여자 지숙은 그런 기애한테 당할 여자가 아니다. 두 여자의 피 터지는 저질스런 현대판 궁궐의 암투가 또 스크린 위에 배처럼 띄워지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김탄을 낳은 어머니를 지숙이로  알고 있다. 어릴 때 이미 김탄과 약혼을 해 놓아 둔 상태인 라헬(김지원)의 어머니 이에스더(윤손하)는 자신의 재혼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예비 사돈관계인 김탄의 어머니 지숙을 만난다. 천륜도 속여야만 하는 재벌들의 비극! 그것도 <상속자들>이 견뎌야 하는 왕관의 무게인가?
      
    탄은 갈데 없어 진 은상을 자기 집으로 데려오고 탄이 나간 사이에 마침 미국에 온 약혼자와 탄의 집에서 마주치게 되고 그 약혼녀는 은상을 향해 [재벌상속자]의 오만한 배경을 휘두르며 자신의 분노를 거침없이 폭발한다.

    두 사람만 있게 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둘은 형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한다. 돌아오는 길에 낙석이 떨어져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모텔에서 하룻밤 묵는다.  



    우연히 서로의 통화나 말을 듣게 해서 서로에 대해 감정이 생길 수 있는 요인을 덫처럼 만들어 놓는다. 
    예고편에서는 은상이 김탄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우연의 남발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짜 맞춘 설정.
     "나 너 좋아하니?" 같은 감각을 자극하는 새로운 말 만들어 내기.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고 해서 그 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쓸 줄 알았다.

    재벌들의, 가진 자들의 온갖 비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을 장식하지만 아주 조금만 이성을 갖고 아주 쬐금 객관성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한 편으로는 재벌들이, 그것을 이어 받을 상속자들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무게 또한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그 무게와 압박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가진 자에 대한 못 가진 자의 무조건적인 증오심이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탄은 주식상속자이지만 경영에서는 제외된, 경영상속자들 속에서는 리어왕 같이 버림받은 존재이다. 탄은 이 세상에서 형을 제일 좋아하지만 형은 탄을 재벌상속자가 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며 차갑게 대한다.
    일편단심 멀리서 보기 위해 달려 온 자신을 차갑게 내치며 돌아서는 형!

    "어떻게 안 와! 형이 여기 있는데...3년만이야! 나 키도 되게 컸는데...!"
    "그게 다지! 미국에서 네가 한 일...거기까지만 해! 여기까지 온 것도 네 분수에 넘치는 연기였으니까!"

    비수를 가슴에 맞은 탄 위로 갑자기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쏟아져서 탄이를 대신해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은상은 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거리감이 사라져서 둘 사이에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탄이는 곧잘 눈물을 글썽거린다.

    중간의 어쩡정한 자리는 운신의 폭이 좁다. 자가용의 가운데 자리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한다.
    서자의 아픔을 가지고 자란 탄이는 일방적으로 무자비하게 틈을 주지 않고 밀어 부치는 형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어 낼까?
     
    작가는 배우만 바뀐 뻔한 달콤한 로맨스로 시청자들을 마취시키지 않고 상속자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사진출처=SBS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