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3시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열려
  • 조선물산장려운동을 펼치고,
    교육을 통해
    일제 치하의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불러 일으켰던 독립운동가.

    [인재가 보배]라고 외쳤던
    이 독립운동가는
    <조선일보>의 [오너]이기도 했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고당 조만식 선생 순국 63주기 추모식]을
    오는 18일 오후 3시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사)고당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방우영) 주관으로 연다고 밝혔다.

    고당 조만식 선생은
    1883년 2월 1일 평남 강서에서 출생했다.

    조만식 선생은
    1919년 3월 오산학교 교장으로 재임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교장을 사임하고 평양으로 가서
    제2차 만세시위운동을 조직했다.

    이 와중에 일제 경찰에 붙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 갇혔다.

    1922년에는
    민족경제의 자립과 발전을 외치며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전개,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1923년에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를 조직했고,
    1927년에는 [신간회(新幹會)] 결성에 참여,
    평양 지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1929년에는 서울역 앞에서
    [광주학생운동 진상보고 민중대회]를 열려다
    일제에 붙잡혔다.

    1932년에는
    사재를 털어 <조선일보>를 인수한 뒤
    사장으로 취임,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과 민족계몽에 앞장섰다.
    당시 [인재가 보배]라는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기독교 장로이기도 했던
    조만식 선생은
    1945년 11월 조선민주당을 창당,
    반공노선에 입각한 신탁통치 반대운동를 전개하다
    소련군에 의해 평양 고려호텔에 연금 당했다.

    소련군의 괴뢰정부를 맡은
    김일성은
    1950년 대한민국 정부에
    [조만식 선생과 김삼룡을 교환하자]고
    거짓 제안을 펼치기도 했지만
    같은 해 10월 조만식 선생을 사형에 처했다.

    우리 정부는 1970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18일 열리는 조만식 선생 추모식에는
    <안중현> 서울보훈청장,
    <안홍순> 광복회 부회장과
    광복회원, 평남도민 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추모식은
    기념사업회 이사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김관선> 산정현 교회 목사의 기도,
    서울보훈청장·광복회장 추모사,
    <김유선> 시인의 시 낭송,
    <정용석> 단국대 명예교수의
    [지금 고당정신이 절실한 이유]라는 주제의
    추모강연 순으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