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수,목 드라마(밤10시)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연출 조수원/ 극본 박혜련) 31일 방송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모두에게 한낱 끔찍한 살인자에 지나지 않는 민준국의 마음이 공개된다.

    긴 악연을 갖고 있는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고 민준국은 아이로니하게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수하와 혜성에게 독백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민준국(정웅인)은 죽이려던 계획을 바꿔 혜성(이보영)을 납치했다. 혜성이를 미끼로 철거계획이 있어 아무도 살지 않는 건물 옥상으로 수하(이종석)도 유인한다.

    늘 혼자였던 민준국은 수하가 오기 전까지 혜성이한테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꼬맹이를 죽이려고 했어!
    그 낚시터에서 꼬맹이 한 말이 날 열 받게 하더라구!”


    1년 전 수하는 낚시터에서 민준국을 만났었다. 수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찔러 봐! 11년 전 나와 다를 게 뭐가 있어?”

    수하는 칼을 들고 고민하다가 말했다.

    “난 달라 난 당신처럼 짐승처럼 살지 않을 거야!”
    “꼬맹이가 나와 같은 상황에서도 과연 짐승이 되지 않을까?
    네 둘을 죽이는 대신 다른 그림을 그려 보려구.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잃어도 짐승이 안 되는 지 궁금해!”

    "수하는 절대 당신처럼 되지 않을 거야!
    수하 아버지 때문에 아내를 잃고 내 증언 때문에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뇨! 이걸 시작한 건 당신이야! 살인을 하므로 모든 변명 이유는 사라졌어!”
    “아무도 내 말 안 들어 주는 데 어떡 해! 경찰, 의사, 아무도!...”
    “11년 간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알겠어.
    복수, 원망으로 가득 찬 그 속이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그 말에 민준국은 처음으로 움찔한다.

    “장담해요 내가 아는 수하는 당신처럼 그렇게 후지지 않아!”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와 같은 곳에서 민준국은 처음으로 자기의 속내를 평생 증오하며 살아왔던 혜성이에게 털어 놓는다.
     


    한갖 살인자로만 보는 자신의 진심을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었으면 혜성이를 붙잡고 얘기하고 있을까?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니 마치 바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온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아 평화로워 보일 지경이다.

    마침내 한 걸음에 달려 온 수하가 옥상으로 올라 오니 민준국은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느긋하게 물을 마시고 있다.

    “그 사람 어디 있어? 그 짓거리에 놀아 날 생각 전혀 없어!
    난 절대로 짐승이 되지 않을 거야!”
    “넌 내가 처음부터 짐승이었는지 알아? 나도 처음엔 사람이었어!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악착같이 일했지!
    심장이식 하면 살 수 있었는데, 그 심장을 도둑 맞았어.
    그 기사 몇 개로 네 엄마를 살리려고!”

    “그 모든 걸 시작한 건 당신이야! 내 아버지를 살해하므로 시작한 거야!”
    “모든 걸 잃어버리면 짐승이 되지! 눈에 뵈는 게 없어지지. 죽일 생각은 없었어.
    그 계집애가 나랑 다르다고 약을 올리더라구! 그래서 죽였어”
    “기분이 어때? 더럽지? 미치겠지? 죽이고 싶지? 죽여! 죽여!”

    혜성이를 죽이기라도 한 듯 피가 묻은 것 처럼 보이는 쇠 파이프를 집어 들고 부르르 떨며 노려보는 수하!
    분노한 수하는 상처 입은 한 마리의 짐승 같다.

    “11년 전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알겠지?”

    민준국은 어떡하든지 수하를 살인자로 만들어 수하와 혜성한테만이라도 자신이 짐승이 아니고 똑 같은 인간임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세상 대신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변명하고 싶다.
    수하는 속지 않는다.

    “장혜성! 내 목소리가 들리니? 난 절대 이 사람 죽이지 않을 거야!
    난 절대로 이 사람처럼 짐승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당신하고 한 약속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이럴 때 수하는 강인한 남자로 변한다.

    “장혜성을 죽였다고 했지? 살아 있어!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내 선택은 같아!
    난 당신처럼 살지 않아! 그 사람은 복수하는 걸 원치 않아!
    당신 아내도 이러고 사는 걸 보면 괴로울 거야.
    당신 꼴이 말이 아니거든!
    아주 끔찍하고 불쌍해! 나 가지고 더 이상 당신 인생을 변명하려고 하지 마!”

    민준국만 그럴까? 인생이 잘 안 풀리면 가까운 사람 중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희생제물로 삼고 모든 원망을 그 사람에게 직접 쏟아 붓는다. 민준국은 직접 살인을 했지만 직접 대 놓고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미움, 증오심으로 살인을 하고 산다. 그래서 늘 불행의 그늘 속에서 평생을 지낸다.
     


     


    자신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직시하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주도적으로 살아야 하지만 인간이 연약하다 보니까 직시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견디지를 못한다.

    하여 회피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려서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원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지옥과 같은 고통 속으로 몰아 넣는다.

    민준국은 어쨌든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가난의 끔찍함과 고통이 있었지만 세상의 매서운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와 쓰러트리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가족이 그 바람을 붙들어 주었다.

    늙은 노모와 어린 아들을 돌봐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이 있었고 힘들지만 병든 아내 심장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이 있었기에 모든 고통을 이기고 나갈  힘이 불끈불끈 솟아오르곤 했다.

    하지만 그를 지탱해 주었던 그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무너진 삶과 그의 심장 속으로 싸늘하고 차가운 바람은 사정없이 휘몰아친다. 더 이상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도 없어지고 살아야 할 이유도 사라지니 저절로 솟던 힘도 사라지고 주저앉게 된다.

    그 자리에 뽑히지 않는 질긴 증오심과 복수심만 잡초처럼 무성하게 뻗어나갔다.
     


    가족은 때때로 벗어버리고 싶은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고단한 인생을 살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다면 이 험하고 고달프기 그지없는 세상을 무슨 힘으로 살아 갈 수 있단 말인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민준국과 수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민준국은 아무도 없었어요!
    믿어주는 사람도 들어주는 사람도 사랑해 주는 사람도 지켜야 할 사람도..
    그 한 사람만 있었어도 다르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민준국은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었다. 다만 자신 앞에 닥친 불행을 거부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그에게는 따뜻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