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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청와대 인왕실.
나이 지긋한 한 여성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꽤 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대통령과 국가 원로 12명이 만나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다.발언의 주인공은 이인호 전 러시아대사.
또렷한 목소리였고 조금은 답답한 듯 목소리가 좀 높아지기도 했다고 한다.이야기의 주제는 [깡통진보] 성향 좌파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유튜브를 통해 퍼뜨린 <백년전쟁>이라는 동영상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순 악당](惡黨)으로 그린 동영상이다.[깡통진보] 국가전복세력에 대한 [문화-사상전쟁]의 불을 붙인 계기가 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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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참석한 원로급 인사들은 대부분 이 동영상의 정체를 아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보셨느냐’는 이 전 대사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못봤다. 그런 동영상이 있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의외]라는 표정을 보인 이 전 대사는 총 동영상의 내용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곳에서 제작을 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영상이 먼저 나왔고,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을 겨냥해 심각한 역사 왜곡이 있다.
이런 내용의 상세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박 대통령도 이 전 대사의 [성토]를 일일이 메모하면서 경청한 뒤 “잘 살펴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와대 공식브리핑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발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여러 버전으로 출시된 이 동영상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는 것에 있다.
조회수가 200만이 넘고,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을 겨냥해 만든 [깡통진보]들의 [선동 콘텐츠]였음에도 말이다.이 자리에 참석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대통령께서 영상을 진짜 몰랐던 것 같았다. 대선 기간 동안 워낙 바빴으니 보고를 못받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예민한 문제다. 대통령도 ‘잘 살펴보겠다’고 대답했고 대통합을 새 정부의 최대 과제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도 어떠한 지침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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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5일 <뉴데일리> 기사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8271
[류근일 칼럼] [백년전쟁]과의 [백년전쟁]...[문화전쟁]의 서막!
박근혜는 [백년전쟁] 할 수 있나?
[특별기획 ⑨] 사상문화전쟁 시작됐다!
종친떼(종북-친북-떼촛불 혼합체) 문화권력에 대한 선전포고
역사관전쟁, [증오]냐 [긍지]냐?
[이승만-박정희를 저주하는 전쟁]과의 전쟁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단체가 대선(大選)을 전후해 <100년의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내놓았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순 악당(惡黨)'으로 그린 동영상이다.
이게 인터넷 공개 한 달 사이 클릭 수 무려 193만을 기록했다.
댓글은 말한다."이승만씨 나쁜 사람 맞습니다"
"그걸(경제) 일본에 헌납해서 경제 식민지 만들려고 했던 것도 박정희라고 나오고…."
한마디로 [반일](反日)과 [친일](親日), [반미](反美)와 [친미](親美), [민족]과 [반(反)민족] 사이의 [100년에 걸친 상쟁(相爭)의 역사]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후자(後者)의 흐름을 대표한 [두 원흉]이라는 식이다.
아무런 백신도 없이 이런 동영상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대한민국 65년사에 대해 어떤 악감정을 가질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고 하는 오도(誤導)가 여전히 한국 정치의 가장 [기층(基層)적인 싸움]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잘나갔어도 '그래도 그것은 친일파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만든…'이라는 적의(敵意)가 도사리는 한, 그리고 그 흥행이 그렇듯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면, 그 싸움은 그렇게 쉽사리 사그라질 수 없을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표면상으로는 민생, 복지, 경제 민주화가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사실은 그런 역사관의 싸움이 끈질기게 저류(底流)를 이루고 있었다.
대한민국 65년사를 "보람 있었다"고 하는 [긍지(矜持)의 역사관]과 그것을 "정의가 패배한…"이라고 매도하는 [증오(憎惡)의 역사관] 사이의 싸움 말이다.
[증오의 역사관]에는 "이승만·박정희, 너희만 아니었다면…" 하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이 깔려 있다.
"너희가 어쩌다가 경제 발전은 해가지고…" 하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도 읽힌다.
반면에 [긍지의 역사관]에는 "대한민국 성공사(成功史)에는 이승만·박정희의 리더십 더하기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이 녹아 있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객관적 사실과 진실은 후자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1974년을 고비로 한반도의 '삶의 질(質)' 경쟁은 시장과 개방 우세로 접어들었다.
[긍지의 역사관]이 발효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나 1987년까지는 [증오의 역사관]과 [종속(從屬)이론]이 시대의 트렌드였다.
'남영동'과 '빙고(氷庫) 하우스'가 낸 반사 효과였다.
그러다가 민주화, 88 올림픽, 북(北)의 300만 아사(餓死) 사태를 거치면서 그것이 설 땅은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현실 설명력을 그렇게 잃어갔어도 [증오의 역사관]은 그러나 수그러들 기색이 아니다.
<100년의 전쟁>과 그 열성 팬들의 반응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사람들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누가 선점하느냐 하는 [문화 전쟁]에서 [증오의 역사관]이 훨씬 더 집요하고 기민했던 결과다.
따지고 보면 [긍지의 역사관]이 꿀릴 이유는 없다.
[긍지의 역사관]은 세계가 인정하는 [긍지의 근거]를 가졌다.그러나 [증오의 역사관]은 [잘된 것까지 잘못됐다고 우기는 픽션]을 썼다.
이 차이가 [긍지의 역사관]이 지닌 정당성의 힘이다.
지난 대선에서 제헌(制憲) 세대, 6·25 세대, 산업화 세대, 민주화 운동 초심(初心)의 [연합 세(勢)]가 투표 당일 막판 끗발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까닭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100년 전쟁]은 [그들의 100년 전쟁]과 다르다.그것은 독립협회 이래의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문명개화 이상(理想)의 우여곡절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은 그 이상의 초기적 결실이었다.
6·25 때의 다부동전투 지휘관은 그 결실을 지켜낸 영웅이지 '민족 반역자'가 아니다.
산업화는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들의 감격의 눈물을 쏟게 한 고심참담한 역작이었다.
그리고 비록 '지하실'에 끌려갔어도 민주화 운동의 대표 투사에겐 그것은 요덕수용소 변호인들 따위에겐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깃발이었다.
문제는 이명박 시대에 이 [긍지의 역사관]이 [증오의 역사관]으로부터 [문화 권력]을 당겨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데엔 인식이 아예 없었다.박근혜 당선인은 있을까?
없으면 그가 말한 '시대 교체'도 '청와대 교체'로 그칠 것이다.
<100년의 전쟁>이 그걸 말해준다.<조선일보 특별기고(2013.1.15) 전재>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 (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