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122호>
    세대갈등, 비전 만들기로 풀어나가야

    배 진 영  
    월간조선 차장
     
      새해를 여는 1월 1일 아침, 《조선일보》에 '2030이 5060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이 실렸다. 《조선일보》가 지난 대선(大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세대 간의 갈등을 치유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실은 글이다. K대 총학생회장이 쓴 이 글에는 나름 그들 세대의 고민이 담겨있었다. 글을 읽어내려 가면서 솔직히 486세대로서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데모하느라 1년의 절반을 놀았으면서도, 서울 중상위권 대학의 상경계나 법정계 학과 정도면 취직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는 흉내도 못 낼 영어실력과 스펙으로 무장하고 있으면서도 취직은 훨씬 어렵다. 정말 안쓰럽고 미안하다. 하지만 위의 글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 하나 있었다. "우리도 알아요. 선배들이 어려운 시기를 견뎠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는 걸요. 하지만 선배들은 가난하게는 살았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꿈이 있었잖아요. 지금 우리에겐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성장사회'가 아니라 혹시 '정체사회', '도태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렵고 가난하게는 살았지만, 그 시절에는 꿈도 희망도 있었다? 얼핏 듣기엔 그럴듯한 소리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선배세대는 어렵고 가난했지만 꿈과 희망은 길거리를 굴러다니고 있어서 그걸 주워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일까?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역사에서 아니 인간사에서 그런 시절은 없었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꿈과 희망이 있었던 게 아니라 가난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꿈과 희망을 만들어 낸 것이다.

    派獨광부들 이야기

      1월 1일 자, 《조선일보》에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었다. 바로 1963년 독일(서독)로 갔던 광부들의 이야기였다. 내게도 아버지뻘이 되는 그분들 시대에 그분들은 가난하고 힘들고, 꿈도, 희망도 없었다. 지금처럼 대학생들이 발에 차이는 시대가 아니라 그야말로 대학생이라면 '대한민국 1%'였던 시절, 그들에게는 일자리도 꿈도 희망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독일로 갔다.

      책만 읽던 고운 손으로는 광부 모집에 탈락할까봐 멀쩡한 손을 바위나 콘크리트 바닥에 벅벅 문질러 '거친 손'을 만들었고, 펜을 쥐던 손으로 자기 키 만한 삽자루를 잡았다. 피곤한 하루 일을 마치고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어도, 그 돈이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1주일 생활비라는 생각에 그들은 맥주집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독일 생활을 하다가 그들은 독일에 돈 빌리러 온 대통령 부부를 붙들고 방성통곡을 했다. 그들 앞에 대통령 부부가 내놓은 선물은 허접한 담배 몇 보루가 전부였다.

      1월 1일 자, 《조선일보》에서 한 파독광부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후 한국에 가보니 흙빛 민둥산들이 나무가 울창한 푸른 산이 돼 있더라고요. 독일의 아우토반 같은 고속도로도 생겼고요. 희망 없는 나라에서 희망 있는 나라가 된 거에요." 이 광부는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 윗세대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꿈과 희망은 있었던 게 아니라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 자기들의 힘과 의지로 희망을 만들어 냈던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들은 절망과 좌절뿐이던 나라를 '희망 있는 나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꿈과 희망은 만들어가는 것


      선배들이 2030세대에게 물려준 것은 '정체사회', '도태사회'가 아니냐고? 지금이 과거와 같은 '성장사회'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선배세대가 고의로 ‘정체사회’, ‘도태사회’를 물려준 것인가? 어느 사회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면 정체하게 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선배세대가 ‘정체사회’, ‘도태사회’를 물려준 게 아니라, 선배세대가 그나마 발버둥을 쳤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이 나라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랬으면 대한민국은 필리핀이나 파키스탄, 미얀마만도 못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 선배세대가 미안해해야 할 게 있다면 더 발버둥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성장사회'를 물려받았나? 그분들은 지금 세대가 물려받은 것보다 훨씬 지독한 '정체사회'를 물려받았다. 남들보다 근대화에 지체되어 일본보다 100년, 구미(歐美) 선진국들보다 200년은 뒤진 사회, 5000년 가난에 찌들고 전쟁으로 남은 게 없는 진짜 '정체사회'를 물려받았다. 일제(日帝)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했던 ‘정체성론’ 속에는 그걸 100%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윗세대는 그런 '정체사회'를 물려받아 자신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대한민국을 이만큼 만들어 놨다.

      5060세대는 그 윗세대가 중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은 나라를 선진국 문턱으로 올려놓았다. 다만 흔히 486세대라고 말하는 우리 세대는 7080, 5060세대가 해 놓은 것에 비하면, 이 나라를 위해 후배세대를 위해 해 놓은 게 없다. 일부 486세대는 입만 열면 '민주화'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지만 솔직히 그게 '민주화'였는지조차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이 나라 민주화나 선진화에 우리 세대가 조금이라도 기여한 게 있다면, 그 또한 공짜로 이루어낸 것은 아니라는 것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꿈과 희망은 누가 주는 게 아니다.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선배님 세대에는 그래도 꿈과 희망이 있지 않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다음 선거 때 두고 보자'고 앙앙불락하는 게 2030세대의 정서라면, 정말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 이번에 5060세대가 미친 듯이 투표장으로 나갔던 것은 2030세대하고 힘겨루기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꿈도 희망도 없다'면서 '88만 원 세대'라고 자조하는 젊은 친구들을 그런 식으로 선동하는 자들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이 나라를 이만큼 키워온 세대의 마지막 책임감이고 애국심이었다.

      5060세대가 세대갈등을 풀자면서 2030세대에게 아부하는 것은 어른스러운 자세가 아니다. 또 세대갈등은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대갈등은 세대를 넘어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고 모든 세대가 힘을 합쳐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능하다. 그 비전은 자유통일일 수도 있고, 30년 혹은 40년 뒤에 우리 후손들이 먹고 살 거리일 수도 있고 혹은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비전을 제시하는 것, 그게 세대갈등을 풀기 위해 기성세대가 할 일이고, 박근혜 당선자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