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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군인만 싸운 전쟁이 아니다. 학도병과 KLO도 있었고, 많은 민간인들이 지게를 지고 유엔군을 도왔다. 경찰, 공무원, 열차 기관사들도 참전했다.
이들 중 62년 만에 미국에서 ‘전쟁영웅’으로 인정받은 열차 기관사가 있다. 6.25전쟁 당시 공산군에 포로로 잡혔던 美24사단장 딘 소장 구출작전에 참가했던 故김재현 기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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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김재현 기관사. 민간인이었음에도 美특공대를 도와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는 오는 6월 26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 내 드레곤 힐 호텔 2층 메자닌 홀에서 6·25전쟁 당시 윌리엄 F.딘(William F. Dean) 소장 구출 및 군수물자 탈환 작전에 참가했다 순직한 故김재현 기관사의 서훈행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192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故김재현 기관사는 전사 당시 대전운전사무소 기관사였다.
故김 기관사는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9일, 대전지역 화차에 적재된 군수물자(유개화차 10량) 회수와 美24사단장 딘 소장 구출을 위해 美특공대원 33명과 함께 대전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일행은 적의 매복에 걸렸다. 적의 공격을 피해 세천역 부근으로 이동하던 중 故김 기관사는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숨졌다. 가슴에만 8발의 총탄을 맞았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열차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미군 특공대원으로 참전한 故김 기관사였지만 60년 넘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철도청 관계자들이 어렵게 생활하던 故김 기관사 유가족들을 돌봐줬다고 한다.
철도청(現코레일)은 1962년 대전시 동구 삼성동의 선로 변에 동상을 세워 그의 애국심을 기리고자 했다. 故김 기관사는 1983년이 돼서야 서울국립현충원 장교 묘역에 안장되었다.
철도청은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20년 전부터 미국 측에 故김재현 기관사의 공적치하 및 포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2011년 국방부 6․25사업 TF가 이 건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그러다 월터 샤프 前연합사령관이 ‘6.25전쟁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사업회’ 美측 명예회장을 맡으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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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터 L.샤프 前한미연합사 사령관. 현재 6.25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샤프 前연합사령관은 故김 기관사의 사연을 들었다. 샤프 前연합사령관의 상세한 설명과 추천 이유를 들은 美국방부는 故김 기관사에게 민간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국방성 특별민간봉사상(Secretary of Defense Exceptional Civilian Service Award)’을 수여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보통 차관보급 이상이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는 故김 기관사가 처음이다.
오는 26일 훈장 서훈식은 美정부를 대신해 존 D.존슨(John D. Johnson) 연합사 참모장 겸 美8군사령관(중장), 前연합사령관이었던 월터 L.샤프(Walter L. Sharp) 장군이 주관한다.
국방부는 김재현 기관사에 대한 美정부의 서훈이 민간인으로 참전한 사람들에게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서훈은 전쟁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현실에서도 고통 받는 민간인 참전자들에게 좋은 선례와 희망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번 행사는 주한미군과의 협조회의 및 국방부, 코레일의 노력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된 만큼, 한·미 우호증진의 대표적인 사례가 됨과 동시에, 내년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停戰협정 60주년을 앞두고 더욱 의미있는 행사가 될 것이며, 한국전쟁 참전 전사자 중 군인과 경찰 다음으로 많은 수의 희생자를 낸 철도인들을 대표하여 故 김재현 기관사의 명예를 선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故김 기관사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랄 수 있다. 6.25전쟁 민간인 참전자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있다.
6.25전쟁 당시 철도청 직원 중 1만9,300여 명이 교통부 산하 전시군사수송본부에 배속돼 참전했다. 이들 중 287명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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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들은 민간인이다. 하지만 6.25당시 공산군 침략에 맞서는 유엔군을 돕기 위해 참전했다. 유엔군은 이 '지게꾼'들을 'A부대'라 부르며 감사해 했다.
일명 ‘A부대’로 알려진 민간인 부대도 마찬가지다. 당시 유엔군 사령부는 민간인들을 ‘지게꾼’으로 동원해 차량이 갈 수 없는 지역으로 탄약, 물자 등을 보급하게 했다. 유엔군은 이들을 ‘A부대’라고 불렀다. 2만여 명에 가까운 ‘지게꾼’이 목숨을 걸고 유엔군을 도왔고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지만 전쟁 후 그들을 보살핀 사람은 없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이제는 참전해 목숨을 바쳤던 민간인들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6.25참전용사들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무공훈장 찾아주기는 조금씩이나마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가 대외적으로 스스로를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만큼 이제는 군인이 아니었음에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민간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