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정부-親정부 시위 동시에 열려..충돌은 없어"푸틴 사퇴"-"혁명 안돼" 구호 대립..지방서도 시위
  • 시베리아의 강추위도 러시아인들의 뜨거운 정치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기온이 섭씨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 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경찰 추산 약 17만 5천 명이 참가한 친(親)정부와 반(反)정부 시위가 동시에 열렸다.

    반정부 시위대는 모스크바 시내 거리를 따라 가두행진을 벌이며 지난해 12월 총선 결과 무효화와 대선 3선에 도전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사퇴를 촉구했다. 이날 가두행진은 지난해 총선 이후 벌어진 야권의 세번째 대규모 항의 시위였다.

    경찰은 이날 가두행진과 뒤이어 벌어진 집회에 최대 3만6천명이 참가했다고 밝혔으나 주최측은 10만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친정부 시위대는 모스크바 시내 서쪽에서 별도의 집회를 열고 러시아에는 '색깔혁명(정권교체 시민혁명)'이 필요없다며 푸틴 지지를 선언했다. 주요 지방도시들에서도 반정부 시위와 친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우려됐던 여야 시위대와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 푸틴 반대 시위 = 이날 정오(현지시간)께부터 모스크바 중심가 남쪽 '칼루슈스카야 광장'에 모여든 야권 시위대는 곧이어 지지 정당별로 대열을 지어 약 3km 떨어진 크렘린궁 인근의 '늪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최대 야당인 공산당과 자유주의 성향의 '야블로코당', 야권단체 '솔리다르노스티(연대)', 좌파 및 민족주의 성향 야권 단체 등이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대오를 만들어 행진했다.

    시위대는 "정직한 선거", "푸틴은 사퇴하라", "푸틴은 도둑", "우리는 권력 교체를 원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약 1시간 동안 서서히 행진했다.

    이후 '늪 광장'으로 모여든 시위대는 오후 2시께부터 집회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연단에 오른 야권 지도자 블라디미르 리슈코프는 "우리는 앞선 두 차례의 시위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블라디미르 추로프 사퇴와 부정 총선 결과 무효화 등을 요구했다"며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외쳤다. 이에 시위 참가자들은 "푸틴 사퇴"를 연호했다.

    리슈코프는 연설을 마치며 대선(3월 4일) 일주일 전인 이달 26일 또다시 대규모 시위를 열자고 제안했다.

    리슈코프에 이어 최근 중앙선관위에 의해 대선 후보 등록이 거부된 자유주의 성향 '야블로코당' 지도자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와 극좌성향 정치단체 '좌파 전선' 지도자 세르게이 우달초프, 유명 가수 유리 쉐브축 등이 잇따라 연설했다.

    이날 야권 대선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재벌 기업인 미하일 프로호로프는 "권력이 국민에게 얼굴을 돌리도록 하기위해 이곳에 왔다"며 "다른 대선 후보들은 가두행진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의회의 따뜻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제도권 야당 지도자들을 꼬집었다. 시위대는 오후 3시께부터 서서히 해산하기 시작해 4시께 모두 광장을 떠났다.

    경찰은 '늪 광장' 시위에 최대 3만6천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집회 주최측은 10만명 이상이 모였다고 엇갈린 주장을 내놓았다.

    이날 경찰은 야권의 가두행진과 집회 내내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안전한 시위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했을 뿐 시위 저지에 나서지는 않았다. 경찰과 시위대간 특별한 충돌도 없었다.

    한편 늪 광장 시위와는 별도로 극우민족주의 정당 '자유민주당'은 시내 중심가 '푸슈킨 광장'에서 별도의 반정부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약 1천명 정도가 참가했다.

    자유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는 연설에서 3월 대선을 통해 당선될 국가지도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차르(제정 시절의 황제)'라고 불러야 한다"며 3선 도전에 나선 푸틴을 공격했다.

    ◇ 푸틴 지지 시위 = 야권의 반정부 시위가 열린 것과 비슷한 시각 2차대전 승전기념공원이 위치한 모스크바 서쪽 '파클론나야 고라'에선 푸틴 지지 집회가 벌어졌다. 집회엔 약 13만 8천명이 참석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연설자들은 시내 다른 쪽에서 열리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언급하며 러시아에서 정권교체 혁명을 허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 주최자 가운데 한 명인 TV 방송 아나운서 막심 쉐브첸코는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국가의 붕괴와 혁명은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유명 방송인 미하일 레온티예프도 "야권 시위대는 푸틴 사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국가 권력을 무너트리려 하고 있다"며 야권을 비난했다.

    ◇ 지방 도시들에서도 시위 = 모스크바 외에 다른 지방 주요도시들에서도 수백~수천명이 참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일부 도시에선 모스크바에서처럼 친정부와 반정부 시위가 동시에 열리기도 했다.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야권 지지자 약 3천 명이 반정부 가두행진을 벌였다.

    모스크바에서 동북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야로슬라블에서도 300여명이 '푸틴 없는 러시아'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밖에 중부 도시 울리야노프스크(500명), 남부도시 사마라(700명), 시베리아 도시 튜멘(300명), 중부도시 니즈니노보고로드(300명), 서남부 도시 보로네슈(200명) 등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극동 아무르주(州) 주도 블라고베셴스크와 남부도시 아스트라한에서는 수백~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야권과 푸틴 지지자들의 시위가 동시에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