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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경찰청장의 컴퓨터를 경찰 간부가 해킹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직속상관 뿐만 아니라 동료의 컴퓨터에 해킹프로그램을 깔고 불법도청을 시도한 것은 경찰 개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날 대전지방경찰청장 집무실에 설치된 데스크톱 컴퓨터에 해킹프로그램을 설치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로 지방청 소속 A 계장(47)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대전경찰에 따르면 A 계장은 지난 16일 오후 대전경찰청사 7층에 위치한 이상원 청장실에 들어가 청장이 사용하는 외부망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teamviewer) 및 녹음 프로그램(snooper), 휴대용 마이크 등을 설치한 혐의다.
경찰조사 결과 A 계장은 지난 10일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해킹 프로그램을 자신의 사무실 컴퓨터에 다운로드한 뒤 14일 오후 청장 부속실 근무자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며 청장실에 들어가 다운받은 해킹 프로그램을 이 청장 컴퓨터에 설치했다.
이어 15일 오전 A 계장 본인의 사무실에서 약 1분간 원격제어 프로그램에 로그인한 뒤 청장이 사용하는 외부망 컴퓨터에 아무런 권한 없이 접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A 계장은 이튿날인 15일 컴퓨터 속도가 느려지는 등 평소와 다른 점을 발견한 이 청장의 수리요구에 따라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가 새로운 컴퓨터로 교체되자 또다시 16일 오후에 같은 방법으로 청장 사무실에 들어가 새롭게 바뀐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을 재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프로그램 설치 뒤 시험 작동을 하던 A 계장은 부속실 직원이 청장 컴퓨터의 이상 징후를 발견, 청장에 보고하면서 청장 지시로 17일부터 정확한 진단에 들어간 사이버수사대에 의해 해킹 프로그램 설치가 발각됐다.
이후 추적에 나선 사이버수사대는 1만여건에 달하는 로그기록을 확인해 원격 조정 컴퓨터가 A 경정 것으로 밝혀냈다. 조사결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 300개의 대화가 녹음됐고, A 계장이 자신의 컴퓨터로 옮긴 5개의 파일 가운데 1개 파일에는 청장과 부속실 직원의 대화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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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격제어(Team Viewer) 프로그램(좌)과 녹음(Snooper) 프로그램(우)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원격제어(Team Viewer) 프로그램은 설치자가 자신의 방에서 타인의 컴퓨터 모니터는 물론 음성까지 엿들을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으로 이메일 등 컴퓨터의 활용 자취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녹음(Snooper) 프로그램은 시간의 제한없이 녹음이 가능하고 녹음된 파일을 이메일로 자동으로 보낼 수 있다.
A 계장은 경찰조사에서 "청장의 의중을 미리 파악해 좋은 점수를 받아 승진인사에 이용하려고 해킹프로그램을설치했다"고 진술했다. 경찰대학 3기 출신인 A 계장은 2006년 경정으로 승진, 경무과 계장으로 근무하면서 내년 총경 승진 대상에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나 후배들이 총경으로 자신을 추월하자 조바심에 A 계장이 이번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지난 19일 A 계장을 직위해제한 뒤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고, A 계장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두번에 걸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했고 첫번째는 이튿날 바로 컴퓨터가 교체되면서 범행이 미수에 그쳐 별다른 활용은 못했다"며 "이후 또다시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했고 컴퓨터 이상 징후를 발견한 부속실의 신고로 꼬리가 잡혔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해킹당한 컴퓨터는 외부망을 이용하는 것으로, 중요 비밀문서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 컴퓨터에서는 내부용 문서 작성 등 일체의 작업을 할 수 없고, 인터넷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또 "청장실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등 보안을 강화했다"며 "모든 참모의 컴퓨터를 대상으로 도청 여부를 점검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1년 연초와 연말에 터진 유례없는 사건이 모두 경찰대 출신 현직 간부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경찰대의 위신이 크게 추락하고 있다. 또한 이에 따라 경찰 수사권 독립은 요원한 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올해 1월에는 경찰대 10기 출신 B씨가 잠들어 있던 어머니에게 볼링공을 떨어뜨리는 수법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는 4월에 열린 참여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면서도 "어머니를 다치게 해 보험금을 받은 뒤 조금 받아 쓸 생각은 있었다"고 진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