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비아의 철권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외신보도로는 카다피는 고향 시르테 근처에서 부상한 채 반군에 생포됐다가 결국 숨졌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NTC 총리는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NTC 대변인은 폭정과 독재가 종말을 고한 역사적 순간이라고 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사실 여부를 최종 확인 중이라고 한다. NTC의 발표대로 카다피가 이미 사망하고 최후 저항거점이 무너졌다면 내전은 이제 종식된 거나 마찬가지다. 카다피는 생포될 당시 혼자였고, 카키색 옷에 터번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틀 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를 전격 방문해 카다피가 생포되거나 살해되길 바란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말대로 이뤄진 셈이다.

    카다피는 2주전만에도 육성으로 지지자들에게 결사항전을 선동해 리비아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민군이 시르테와 함께 카다피 추종세력의 최후 거점 중 하나인 바니 왈리드를 사흘전 장악하면서 사실상 내전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던 셈이다. 나토가 바니 왈리드 장악으로 리비아 군사작전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한 NTC가 "카다피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지 두달만에 일어난 일이다.

    40여년간 철권통치를 해온 카다피 정권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리비아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됐다. 지난 2월15일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지 8개월여만에 리비아 국민이 이룬 위업이다. 카다피는 무혈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권좌에 오른 지 42년 만에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서 시작돼 들불처럼 아랍권에 번진 민주화 바람 탓이다.

    철옹성이나 불사조처럼 여겨졌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은 물론 카다피 정권도 `재스민 혁명'의 불길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권좌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예멘이나 시리아 정권의 향방도 이제는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카다피의 최후는 민심을 등진 절대권력의 종말이 어떻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산 교훈이다.

    카다피 사망과 내전 종식으로 이제 관심사는 리비아에 어떤 정부가 새로 들어설 것이냐 하는 것이다. NTC는 반 카다피 세력을 결집한 기구로, 사실상 임시정부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이미 NTC를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NTC가 새 정부 구성 과정에서 다양한 종파와 부족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역량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국민의 뜻을 충실히 수렴해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이끌어갈 민주 정권 창출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NTC는 서둘러 과도정부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이후 새 헌법을 제정하고 선거를 통해 국민이 주권의 원천인 민주독립국가를 탄생시킨다는 로드맵도 마련해놓았다고 한다. 관건은 NTC가 과연 이런 로드맵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할 수 있느냐다. NTC 참여 세력들이 소아를 버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를 좇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국제사회도 이른 시일에 민주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카다피 정권 붕괴가 오래전에 기정사실로 굳어졌었던 만큼 우리 정부도 리비아 사태의 전개 상황을 예의주시해왔으리라 짐작된다. 머지않아 들어설 새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갖기 위한 준비 작업도 꼼꼼하게 해왔을 것이다. NTC의 카다피 사후 로드맵에 따라 현명하게 외교적 대응을 해나가야 할 때라고 판단된다.

    모쪼록 리비아의 국내 상황을 살펴가면서 치밀한 대비책을 세워주길 바란다. 국가 간 경쟁의 장에서 우를 범해 불리한 처지에 몰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기업들도 신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