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진행 중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영업정지와 수사 압박 못견딘듯", 檢 "안타깝다"
  • 최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비리 의혹 수사 대상에 오른 제일2상호저축은행의 정구행(50) 행장이 23일 투신 자살했다.

    이날 낮 12시5분께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제일2상호저축은행 본점 앞길에 정 행장이 엎드린 채 숨져 있는 것을 순찰 중이던 관할 파출소 경찰관이 발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인근을 순찰하던 직원이 `퍽'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보니 정 행장이 숨져 있었다"며 "검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도중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보이고 정확한 상황은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정 행장은 앞서 낮 12시께 3층 행장실에서 마지막으로 직원들에게 목격됐으며 당시 검찰은 2층을 압수수색 중이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정 행장은 투신하기 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행장실에서 임원들에게 "압수수색에 협조를 잘 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제일2상호저축은행은 지난 18일 금융위원회로부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6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7개 저축은행 가운데 하나다.

    저축은행의 불법ㆍ부실대출 등 비리 의혹 수사에 착수한 검찰 등 정부 합동수사단은 이날 오전 해당 은행 7곳 본점과 대주주 자택 등에서 압수수색을 실시, 회계 장부와 전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자료를 확보했다.

    합수단은 압수한 자료를 검토한 뒤 불법대출 등 혐의가 있는 은행 경영진 등 관련자들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주요 경영진과 일부 대주주는 이미 출국이 금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압수수색에 이어 행장의 투신자살 소식을 접한 제일2저축은행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제일2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정 행장은 육군 학사장교 출신으로 강직한 성품이었다"며 "최근 영업정지와 이날 압수수색 등 악재가 겹치면서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모회사인 제일저축은행의 이용준 행장은 "현재로선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동안 금융감독원의 경영진단에 대응하느라 서로 만날 시간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이 모두 불법대출을 저질렀지만, 업계에선 정 행장이 불법대출 등 비리에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계열사의 여ㆍ수신은 보통 모회사의 결정을 따르는 데다 정 행장의 경우 1986년 제일저축은행의 영업부 행원 출신으로 지난 2005년 행장에 선임돼 제일ㆍ제일2저축은행의 중요 의사결정에 발언권이 그다지 세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다만, 지난 5월부터 제일저축은행의 뱅크런(대량 예금인출)이 제일2저축은행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제일저축은행이 제일2저축은행의 매각을 추진한 데 따른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았겠느냐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정 행장의 투신 자살 소식을 전해들은 저축은행 합동수사단 관계자는 "협조를 잘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합동수사단장을 맡은 권익환 부장검사는 "검찰이 협조를 당부하자 본인이 협조하겠다고 했다고 한다"며 "은행이 영업정지되고 검찰 수사까지 앞두고 있어 많은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부장은 "예정된 일정은 차분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다른 은행에 대해서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