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한편의 써스펜스 쇼 같다. 미국의 주민투표는 무력한 정치에 반발해 주민들이 발의하는 것이지 자치정부의 수반인 시장이 발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민들의 의견에 의존하는 주민투표는 본인이 해결하지 못해 스스로의 리더십이 무력하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돌파구가 없을 때 쓰는 마지막 카드다. 때문에 주민투표는 여러 차례의 여론조사와 공청회를 열어 충분히 시민단체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뒤에 압도적인 승리를 확신하기 전엔 아예 하지를 않는다.
오세훈 시장은 젊고 미남이라 강남 아줌마들한테 인기가 대단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너무도 자신을 했었는지 또는 압도적인 다수 민주당 시 의원들과 계속 깐죽거리는 교육감의 공격에 더 이상 참을수 없었는지 몰라도 너무 경솔하게 서둘렀다.
오 시장은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고 한나라당의 도움으로 시장에 당선됐다. 그렇다면 주민투표를 혼자 결정하기 보다는 애당초 한나라당과 의논해서 당이 주도가 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국 막판에 가서 한나라당까지 끌어들인 정치 승부에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할 수 없이 당 차원에서 돕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차기 대통령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한나라당 친 박근혜계의 마음을 돌리게 하려는 속셈이였지만 실패했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하자 시장직 사퇴란 카드를 내놓고 눈물을 흘리며 유권자에게 호소했으나 결국 이마저 실패했다. 이 바람에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오 시장의 신임투표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참으로 희한하다. 특히 투표율이 3분의 1 미만이면 투표함을 열지 못한다는 제도가 그렇다. 310 억원을 들인 투표함은 마땅히 열어서 그 결과를 시민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졌지만 사실은 이겼다는 말이 맞는지를 알 수 있다. 310 억원 짜리 투표함들을 열어 보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건 너무도 아쉽다. 미국이라면 그 결과가 어떻든 투표함은 반드시 연다.
“나쁜 투표는 하지 말라”는 선거구호는 미국에선 들어 보지 못한 이상한 선거 구
호다. 미국에선 수십억을 들여 어떻게든 투표율을 올리려 애를 쓰고 초등학교에서부터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며 동시에 의무라고 가르친다. 헌데 투표를 하지 말라니 미국 같았으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투표를 안 하는 건 투표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결국 투표 결과가 어찌 나오던 그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겠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투표율이 아무리 적더라도 투표 결과는 법적 효력을 발생한다. 투표를 포기한 건 아예 상관 없는 걸로 계산에 넣지도 않는다. 투표장에 안가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대우해서 이들이 3분의 1이 안 되면 아예 선거자체가 무효가 된다는 건 무언가 꺼꾸로 된 것이다.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통과된다는 법례는 의회나 이사회 같은데 적용하지 주민투표는 아니다. 3분의 1이건 4분의 1이건 투표함은 반드시 열었어야 했다.
또 하나 아쉬운 건 오 시장 캠프에서 3분의 1에 대한 내용을 사전에 잘 알았을 텐데 왜 투표를 안하면 오 시장이 승리하는 것으로 말을 바꾸질 못했나 궁금하다. 전면급식에 반대하면 투표장에 나오지 말라고 말을 고쳤더라면 투표를 안 하는 게 오 시장의 승리로 이끌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여튼 이번 주민투표 결과는 마치 ‘나는 가수다’ 라는 한 편의 숨 막히는 쇼를 보는 것 같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 1978년 처음으로 주민들이 발의한 역사적인 투표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Proposition 13이다. 투표는 주택에 대한 부동산세를 1975년으로 돌려놓고 그 때부터 해마다 2% 이상 올릴 수 없도록 못을 박은 주민 법안을 대상으로 치러졌다. 주 의회와 주지사의 무력함에 반발해서 나온 이 주민투표의 결과는 압도적인 찬성 (64.8%) 이었다. 투표율이 유권자의 3분의 1이 안 되면 무효란 규정은 당연히 없었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이 투표했는지 여부였을 뿐 몇 명이 투표에 불참했는지는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