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공화당은 보수, 민주당은 진보를 대변한다. 두 당은 지난 235년 동안 이처럼 뚜렷한 이념적 노선을 근간으로 양당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극명하게 다른 이념에도 불구하고 일치단결하는 사안이 있다. 다름 아닌 국가안보와 관련된 경우다. 이라크 전쟁도 시작 때는 거의 만장일치였다. 반면 집권 한나라당은 보수이고 야당인 민주당은 진보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사사건건 서로 반대하고 대립한다. 심지어 국가안보와 관련된 대북정책을 놓고도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의 큰 차이는 국내 경제정책에 있다. 건전한 민주정치를 유지하려면 우선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는데 둘 다 의견이 일치한다. 단지 그 방법에 크나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빈부의 차이를 정부가 그냥 방치하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힘 없는 가난한 층은 가난에 더욱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이들은 여기 저기서 폭동이 일어나는 것도 바로 이 빈부격차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때문에 정부 지출을 늘여서라도 빈곤층을 돕는 복지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복지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며 어쩌면 이는 바닥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재스민 폭동’ 같은 불만을 막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믿으며, 부자들만의 세금을 추가로 올려서라도 빈곤을 퇴치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민주당의 존슨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은 Great Society (위대한 사회-가난이 없는 사회)를 부르짖었다. 때문에 민주당은 자연히 저소득층과 소수민족들을 대표하고 노조를 옹호하는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된 것이다. 이들은 특히 강력한 큰 정부를 원한다. 정부의 개입이 없이는 가난을 퇴치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공화당은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이 만든 정당이다. 그러니 창당 초만 해도 압도적인 다수의 흑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흑인들은 점점 공화당 정책에 반감을 갖게 됐고 지금은 거의 80% 이상이 민주당 편이 됐다.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은 부자를 끌어내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면 결국 둘 다 가난해 진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의 무상 지원이나 보조가 지나치게 되면 차차 일할 의욕이 상실되며 잘못하면 게으른 사회(Lazy Society)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사회복지 정책은 생산력을 약화시키고 정부의 빚만 늘려 결국 나라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고 믿는다. 때문에 보수파인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는 서로 손을 잡고 신자유주의를 부르짖었다. 신자유주의를 내걸고 사회복지비용을 삭감하고 소득세도 삭감했던 것이다. 삭감 된 소득세는 소비자의 지출을 늘리기 때문에 기업들의 고용 창출과 소득세가 늘어 국가 재정이 든든해진다는 이론이다.

    우리의 경우 무엇이 대한민국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13년 동안 머물고 있는 개인소득 2만 달러 상태에서 벗어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이 표방했던 “위대한 사회”냐 아니면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가 내세웠던 “신자유주의” 냐의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미국은 국가 부채 상한 협상 과정에서 보인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속적인 이념 대결로 결국 국제적 신임을 잃고 신용이 추락하는 위기를 맞았다. 미국 여론은 이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판했고, 결국 지금은 오바마의 재선이 불투명한 상황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판은 대립이 아니라 누가 더 진보인지 경쟁하는 것 같다. 다가오는 선거를 의식해서 그런지 당의 원칙도 버리고 표를 좆아 우왕좌왕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안될 말이다. 특히 소위 보수파인 집권 한나라당이 먼저 무상 정책을 내놓는 것은 보기 민망하다. 민주당이 내놓은 19조원 복지예산(교육의료보육 13조원, 반값등록금 5조 7000억원)을 조목조목 따져 삭감할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저축은행 예금 보상과 1조원이나 드는 0세 무상보육안까지 내놓았다. 이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더 많은 무료 정책으로 민심을 얻으려 경쟁하고 있으니 한심스럽다. 모두 합쳐 30조원이나 된다는데 이 많은 돈을 어찌 충당하려는 건지 이제 머지 않아 나라 곳간이 거덜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앞으로 선거까지 6개월이나 남았는데 어떤 무상 정책이 더 나올지 납세자들은 그저 조마조마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