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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이 ‘5초 엎드려뻗쳐’ 사건으로 호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들끓는 여론을 지켜보며 한편으론 진보의 맏형으로서 김상곤 교육감이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학생인권조례’ 추진이 뜻하지 않게 고비를 맞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경기교육청의 행태를 보면서 이런 일말의 불편했던 감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경기교육청은 20일, 파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생활지도 불응사건에 대해 “교권침해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문제의 사건은 파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네 명의 학생이 학교담장 밑에서 담배를 피다 적발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학생들은 담배를 피는 것도 모자라 담장에 소변을 보기까지 했다. 때마침 이들을 목격한 한 교사가 학생들을 꾸짖었으나 학생 한 명이 “법대로 해”라며 교사에게 대들었다. 그 학생은 교사의 가슴을 두어 차례 밀기도 했다. 다행히 학교관계자가 다가오자 학생들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사건 발생 직후 학교는 7명의 교사로 구성된 선도위원회를 열어 교사에게 불손한 행동을 보인 주동자 학생에 대해서는 등교정지와 함께 해당 학부모에게 전학을 권고하고 다른 세 명의 학생에 대해서는 교내 봉사명령과 함께 벌점을 부과했다.
그러나 학교는 사건자체를 열흘이 넘도록 쉬쉬하고 있다 뒤늦게 도교육청에 보고했다.
문제는 이때 불거졌다. 보고를 받은 도교육청은 담배를 피다 불손한 행동을 한 학생을 처벌했다며 ‘홍보’했다. 직전에 발생한 ‘5초 엎드려뻗쳐’사건을 의식한 모습이었다.교권을 보호해야 할 도교육청이 교사에게 불손한 행동을 한 학생은 두둔하고 오히려 교사만 징계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나온 발표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여론의 들끓은 비난에 교사만 징계한 것이 아니라, 학생도 처벌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교육청은 파주 사건에 대해 “교권 침해는 아니다”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어서 도교육청은 앞서 발생한 엎드려뻗쳐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주장을 내놨다. 징계를 받은 교사가 엎드려뻗쳐만 시킨 것이 아니라 멱살을 잡고 한차례씩 뺨을 때렸다는 것이다.
체벌을 금지한 상황에서 멱살을 잡고 뺨까지 때렸으므로 정당한 징계라는 논리였다.도교육청의 이상한 논리, 어디까지 해야 교권침해인가?
경기교육청의 논리에 따르면 학교에서 담배를 피다 걸린 학생이 교사의 가슴을 밀치며 “법대로 해”라고 말해도 교권침해가 아니다. 단지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반면 몸이 약한 학생의 휴대폰을 빼앗고 수업시간에 큰 소리로 전화를 하고 이를 나무라는 교사에게 불량한 태도를 보인 학생을 지도할 때 교사는 직접적 체벌은 물론이고 엎드려뻗쳐를 시켜도 안 된다. 이것은 학생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교사는 학생을 ‘생각하는 의자에 앉히거나’, ‘선생님과 함께 운동장을 걷거나’, ‘교실 뒤에 1~2분쯤 서 있도록’ 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이 학생인권보장인가? ‘高위험군’ 학생 지도에 있어 ‘제압’은 불가피
여기서 두 가지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하나는 무엇이 학생인권보장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인권과 교권의 충돌 문제이다.학생의 인권은 보장해야 한다.
공부를 못한다 해서, 집안이 못산다 해서 혹은 몸이 약하거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받거나 차별대우를 받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런 이유로 멸시하거나 차별하는 교사와 학교가 있다면 이들은 파면을 넘어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같은 상황을 알고도 묵인하거나 학교 및 학급관리에 현저한 과실이 있는 학교관리자와 교사에게도 이에 못지않은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이 학생인권보호이다. 상처 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따뜻하게 등을 토닥거려 주는 것이야 말로 인성교육의 핵심이다.
반면 그릇된 행동을 그치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따끔한 훈육과 지도가 뒤따라야 한다.
본인 스스로도 걷잡을 수 없는 격앙된 흥분상태에 놓여 있는 ‘高위험군’ 학생의 지도에 있어 ‘당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제압’이다.
교사의 지시를 대놓고 조롱하고 비웃고, 반말과 험악한 욕설을 서슴치 않는 학생들과 다정하게 운동장을 걷고, 이들을 생각하는 의자에 앉혀 성찰케 한다? 교실은 영화나 드라마속 학교가 아니다.
다수의 다른 학생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거나 좋지 않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신속한 제압은 불가피하다. 당사자인 학생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장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그들의 흥분상태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생각하는 의자’는 그 다음 단계에 필요하다.
체벌전면금지는 ‘공허한 理想’…현장 전교조 교사들, 더 ‘강력히’ 학생 다뤄
취재를 하면서 많은 학교현장을 돌아다녔다. 단 한번만이라도 가공되지 않은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학교현장을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체벌전면금지가 얼마나 공허한 理想인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역설적이게도 체벌전면금지를 적극 지지하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더 ‘강력하게’ 학생들을 다루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럼 그들은 전교조에 등을 돌린 교사들인가? 아니다.
체벌의 필요성은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사들이라면 거의 대부분 동의하는 사항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거의 모든 교사들은 체벌에 반대한다. 체벌을 원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학교의 현실이 척박하다는 반증이다.체벌을 금지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학급 정원수를 1/2 이하로 줄이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 교사들도 노르웨이나 핀란드처럼 교실을 운영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가정상황까지 꼼꼼히 챙기며 일대일 맞춤형 수업과 눈높이 교육도 할 수 있다. 체벌은 하라고 떠밀어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진정으로 체벌을 없애고 학생인권을 보호하고 싶다면 전교조와 진보교육감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교과부와 정치권에 학급정원 축소와 교사증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그럴 생각이 없다면, 학생인권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체벌을 인정해야 한다. 정말 학생인권을 보장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리고 드물지만 체벌을 없앤 학교를 찾아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살펴보길 권한다. 그들이 어떻게 체벌을 없앴는지를 꼼꼼하게 점검하기 바란다. 불과 두어시간 동안 학교가 준비해 놓은 일정에 따라 둘러보고 이미 정해진 브리핑을 듣는 것으로 모든 것을 안다 생각하지 말고 암행점검이라도 해서 그 비결과 명암(明暗)을 분명하게 살펴야 한다.
학생인권보장은 체벌의 유무에 달려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교사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노력과 이를 뒷받침 하는 학교, 그리고 전 구성원의 합의...학생인권보장은 이를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체벌은 알아서 사라진다. ‘때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누굴 위한 학생인권보장인가?, ‘高위험군’ 학생에 대한 지도 포기와 다를 바 없어
또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누구를 위한 학생인권보장인가 하는 것이다.발달단계에 놓여 있는 중고등학생을 제 때, 적절한 방식으로 지도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의 책무이다.
학생인권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폭력적 성향을 띠는 이른바 ‘高위험군’ 학생에 대해 체벌을 허용치 않는다면 이는 사실상 해당 학생에 대한 지도를 포기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진보교육감들은 ‘高위험군’ 학생에 대한 지도에 있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高위험군’ 학생은 그 특성상 다른 학생에 비해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관리와 지도가 뒤따라야 한다.
전교조와 진보교육감들은 학생인권보장과 체벌전면금지가 이들에 대한 사실상의 방치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현실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체벌전면금지와 학생인권조례를 주창한 이들이 바로 본인들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과 교권 충돌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체 구성 절실
두 번째는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하는 경우이다. 이번 두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하는 경우는 사실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이 경우 합리적 분쟁의 해결이 필요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이를 맡길만한 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다. 학생인권과 교권의 보호는 법령에 앞서 사회 구성원 사이의 총체적 합의가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가 전체되지 않은 입법은 현실과 겉돌 수 밖에 없다.
교과부와 한국교총, 전교조, 그리고 학부모단체가 해야 할 일은 교권과 학생인권이 충돌하는 경우를 사전예방하고 분쟁발생시 이를 다루기 위한 사회적 합의체를 만드는 일이다.
물론 필연적으로 학생인권과 교권의 정의와 범위, 체벌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학생인권보장인가? 체벌을 없앤다면 학생인권은 보장되는가? 교권과 학생인권의 충돌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전교조와 진보교육감들이, 그리고 교육당국과 교총이 답을 내놔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