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통합 바탕에는 민족한국전쟁 '슬픈 전쟁'으로만 보는 건 민족주의 사관 영향
  • 20세기 한국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근현대사는 고대사와 달리 현재의 정치·사회적 상황과도 연관이 있다 보니 이를 평가하는 시각이 나뉠 때가 많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서의 평가마저 이렇게 나뉠 경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한국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근현대사는 고대사와 달리 현재의 정치·사회적 상황과도 연관이 있다 보니 이를 평가하는 시각이 나뉠 때가 많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에서의 평가마저 이렇게 나뉠 경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선진화홍보대사들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제대로 접근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역사 속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이를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 선진화 홍보대사(이하 <선>) 근현대사는 상대적으로 현재에 가깝다 보니 다양한 평가가 나옵니다. 20세기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아직까지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민족주의' 성향은 객관적인 역사평가를 어렵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인식 방향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이영훈 교수(이하 <이>) 답변하기에 앞서, ‘민족’이란 단어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군요.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이란 단어가 오래전부터 쓰여 온 것이라 여기며, 더불어 민족의식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은 일제시대 국민들 사이에 하나의 정치적 운명공동체 의식이 생겨나면서 일본으로부터 역수입되어 들어온 말입니다.

    이 때 강하게 생겨난 민족의식은 국민의식 밑바닥에 항상 깔려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생겨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이념 혹은 정신이 민족주의가 된 이유입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평소엔 자유 민주주의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지만 정치영역, 특히 통일정책에서는 민족주의 이념과 민주주의 이념이 충돌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민족주의라는 이념은 다분히 감상적인 겁니다. 민족주의라는 집단적인 열정으로는 선진국이 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자유와 인권, 평등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가 훨씬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민족주의 내세운 '함정'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선> 대한민국의 건국은 광복 이후 혼선을 빚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미군정이 실질적인 국가 통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부는 1948년 8월 15일, 38선 이남에서만 수립되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 민족에게 대한민국 건국이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질문지 내용은 대다수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사용한 역사적 해석 방법 하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해석을 접한 학생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남한 정부가 미국의 식민지로 시작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4.19 이후 혹은 민주화 혁명 이후에야 진정한 독립국가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1948년의 대한민국의 건국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입니다.

  •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해석은 앞서 질문에서 지적한 민족주의 역사학의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은 민족주의 역사학이 주류 역사학으로서 자리했었고 그 여파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민족주의 역사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비판적인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국가를 만든다는 개념부터 다시 봅시다. 국가를 만드는 것은 단계적, 장기적 건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어려운 일이며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진국가로서의 건설은 장기간에 이루어지는 일이며 단계적인 일로서, 각 나라가 처한 단계마다의 과제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발전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단계마다 과제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1948년에 남한은 새로운 정부를 수립, 건국을 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해석할 때 지금의 시점이 아닌 당시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시 남한은 최빈국이었습니다. 근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였으며 문맹률도 높았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국민이 농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주의’가 득세하였는데, 그 이유는 농촌의 공동체주의와 공산주의가 내세운 게 비슷하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이러한 상황 하에서 ‘자유 민주주의’라는 방향성을 가진 국가를 세울 것을 선언합니다. 이것이 건국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는 당시에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장애물을 무릅쓰고 ‘자유 민주주의’국가의 건국을 선언한 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1948년 건국은 ‘자유 민주주의’, ‘자유 시장경제체제’라는 체제 선택을 올바르게 했다는 점에 있어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정권, 자유를 해쳤을까,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을까

    혹자는 그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서 자유 민주주의와 대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자유주의’라는 건국이념을 해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 정부가 권위주의적 성격을 띤 이유는 1950년대 당시 상황과 연관이 있습니다. ‘자유주의’라는 방향성을 잡은 국가를 세운 이후 정부가 당면한 과제는 아직 국민들에게 생소한 ‘자유주의’라는 이념을 교육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자유 시장경제체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국민들과 자유주의 국가를 세울 수는 없죠.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리더십이 당면한 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케 할 것이라 여겼기에 그러한 선택을 한 것으로 봅니다. 권력 형태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때에도 자유는 지켜졌다고 봅니다.

    <선> 혹자는 한국전쟁이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서 약소국이 피할 수 없었던 전쟁이라고 평가합니다. 열강들의 신경전 가운데 한국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요? 한국전쟁과 남북의 통일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한국전쟁을 볼 때는 1) 세계사적 배경, 2) 내전적 성격, 3)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서 남북 간 경제적 군사적 격차라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남·북에 서로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서 나라가 분단됩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나라가 분단이 되면 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전쟁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서로가 강력한 국방태세를 갖추어 어느 한 쪽이 먼저 공격하더라도 다른 쪽이 쉽게 점령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서로가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인해 남·북간의 경제력, 군사력 격차가 매우 컸습니다. 북은 개인 화기를 만들 만한 공업시설이 존재했던 반면에 남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국전 이전까지는 남한은 미국의 냉전 전략에서 그리 중요한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북한이 소련과 중국과의 합의해 남한을 공격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상황을 보면 여러 측면에서 남한이 불리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서로 국력 차가 미미하면 전쟁을 도모하기가 어려운데, 이 당시 남북 간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광복 이후 군정을 철수시킨 뒤 남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미국에게 공산권의 침입은 당황스러운 일이었으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전쟁 가운데 전사하였고, 이를 통해 미국은 남한과 명실상부 피의 동맹을 맺게 됩니다. 한국 전쟁은 이처럼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한국 전쟁의 두 가지 모습

    왜 오늘날 한국인들이 한국전쟁에 무관심한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그 무관심이 민족주의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쟁을 ‘슬픈 전쟁’이라고 기억합니다. ‘동족상잔’, ‘민족 간의 적대심’과 같이 말이죠. 이것이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수사(修辭)입니다. 이것을 ‘슬픈 역사’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전쟁은 공산주의 세력의 침입으로부터 자유와 인권을 지켜낸 전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사건을 슬프고, 기억하기 싫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만 설명하면 그 사건은 기억에서 잊히게 됩니다. 반대로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한 위대한 사건이라고 설명하게 되면 후대 사람들은 그 사건을 되새기며 기억하게 됩니다. 한국전쟁도 감정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 저희가 알고 있기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명목으로 체결한 한일 협정은 그저 명목상의 협정, 오로지 경제 성장 자금만을 위한 협정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때의 한일 협정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협정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이> 많은 학생들이 그 당시 한일 협정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거세었다고 배워 알고 있지만 사실 국민의 대다수가 협정에 찬성했습니다. 일부 지식인들이 반대했죠. 미국의 압력 속에 국교정상화를 위해 양국의 대표가 만났을 때 우리나라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일본 대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반박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문제에 있어 두 정부의 입장 차이가 확연했습니다.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왜 그 당시 한국이 지속적으로 일본에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느냐’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 미국이 한국을 떠나는 걸 막기 위해 한국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쉽게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시간만 끌 수도 없고 배상이나 사과문제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문제는 덮어두고 경제 협력 자금과 기술을 들여온다는 조건으로 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 나는 한일 협정의 진정한 의미를 8억 달러에 불과한 경제협력자금보다 일본의 자본, 기술, 부품과 한국의 노동력과 결합해 세계 시장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한 것에 두고 싶습니다. 또한 이 협정을 맺은 뒤 전 세계에 자유무역주의 바람이 불면서 우리나라는 시대 흐름에 맞춰 고도성장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 정서를 초월해 경제 협력 자금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계 도약의 시발점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협정입니다. 식민지 배상 문제에만 집착해 한일협정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계인으로서, 피지배자의 기억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큰 시각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선> 2004년 3월 2일, '일제 강점 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제안 이유는 왜곡된 역사를 시정하지 않고 넘어간 탓에 사회정의가 흐려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반증이 어려운 비과학적 명제들로, 기준이 모호해 자칫 인민재판이 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이> 국권 패망에 협조한 자, 혹은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들을 친일파라고 합니다. 먼저 국권의 패망에 협조한 자들에 대하여 말해볼까요. 흔히 ‘을사 5적’을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과연 이들 때문에 조선왕조가 망했을까요? 한 왕조가 망하는 것은 정치, 문화, 경제, 군사 등 모든 방면이 쇠락의 길을 걸어야 가능한 것이지요. 따라서 그들이 나라를 망하게 한 주범이며 그래서 처벌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볼 때 옳지 않다고 봅니다. 국권의 패망 자체가 역사의 흐름인데, 여기에 협조한 자들을 모두 찾아내 처벌한다는 자체가 사실 불가능합니다.

    이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재판받을 권리는 있습니다. 단순히 집단 감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면 역사에 또 다른 상처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들도 재판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의 친일파 청산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한국인 스스로가 역사(과거)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다는 거죠. 국민들이 억울함, 분함 등의 부정적(negative)인 감정을 가지는 것은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을 국민들 스스로가 자유, 법의 중요성 등을 밑바닥에서부터 이해하고 관용 등의 긍정적(positive)인 감정으로 바꾸어 낸다면 친일파 청산이라는 족쇄에서 풀려 선진 한국으로 나아갈 국민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홍보대사: 김시원, 김혜진, 설지원, 이수정,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