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전문계고, 10년간 학교․학생수․취업률↓, 진학률만 고공행진전문계고=‘2등 시민’, 왜곡된 사회적 인식 가장 큰 문제전문계고 대책, 재직자 특별전형 확대 등 교육당국 적극적 개입 아쉬워 ‘위기를 기회로’, 위기 극복한 전문계고들…해법 제시
  • 지난 10년 동안 학교와 학생수, 취업률은 줄어들고 진학률만 높아졌다. 우리 ‘전문계’ 고등학교의 불편한 진실이다. 실업고에서 전문고로 다시 특성화고로 이름을 세 번이나 바꿨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길과 졸업생에 대한 대우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사회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계 학교와 학생들이 변하지 않았다고 탓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결국 변한 것은 허울 좋은 이름뿐이다.

    2001년부터 작년까지 10년 동안 국내 전문계고의 변화추이를 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교과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9일 공개한 ‘2010년 전문계 고등학교 현황’이 그것이다.

    10년간, 취업률 35.5%↓ 진학률 30.3%↑…양극화 현상 보여줘 
    이에 따르면 작년 4월 현재 전국 전문계고는 692곳으로 재학생은 46만3천8백여명에 이른다. 2001년과 비교하면 학교수는 10년간 83곳, 재학생수는 약 11만 5천명 가량 줄었다.

    줄어든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상징하는 ‘취업률’은 2001년 54.7%에서 작년 19.2%로 무려 35.5%가 줄었다. 반면 대학진학률은 같은 기간동안 30.3%가 늘었다(2001년 40.8%→2010년 71.1%).

    전문계고가 '인문계화' 된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취업률과 진학률이 역전된 2003년 이후 계속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해가 갈수록 그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작년에는 그 격차가 조금 줄어든 모습을 보였지만, ‘본격적인 원상복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문계고 학생이 취업을 기피하는 이유? ‘고졸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취업률이 내려가고 진학률이 오른 것이 무슨 문제냐 할 수도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가 고도화 될수록 실무형 인재보다는 높은 과학적 지식을 갖춘 이공계 인력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취업-진학률 역전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무서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전문계고 졸업생이 이런 논리 때문에 취업이 아닌 대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전문계 고등학생들이 취업을 마다한 채 고교 입학과 동시에 대학 진학에 매달리는 이유는 지식 고도화 사회에 필요한 과학적 지식을 갖추기 위한 것도, 본인의 적성이나 자질을 고려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실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사실이 던져주는 불편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전문계고 졸업생의 진학률 역전현상이 통계상 처음 나타난 것은 2003년이다. 이해 진학률은 52.7%로 처음으로 취업률을 앞질렀다. 당시 취업률은 44.4%였다. 그 후 진학률과 취업률의 격차는 해가 갈수록 벌어져, 2009년에는 그 차이가 최대치를 기록했다(취업률 16.7%, 진학률 73.5%).

    그렇다면 전문계고 학생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대학 졸업자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 수준과 승진 등 인사에서의 불이익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고졸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다.

    ‘고졸자’를 ‘2등 시민’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같은 현상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특히 이런 인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넓게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현실을 바꿀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해법도 전문계고에서…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학교, 위기를 넘어서다! 
    다행히 아직 우리는 그 방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해답을 바로 전문계고의 또 다른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몇 몇 전문계고는 학교만의 기발한 발상의 전환으로 진학률 역전현상을 극복하고 있다. 묵묵히 우직하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위기를 뛰어넘은 학교도 있다. 이들 학교들은 전문계고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 서울여상, ‘여상’의 전통을 자부심으로
    서울여상은 개교 당시부터 이어온 ‘여상’의 전통을 자부심으로 승화시킨 경우다. 이 학교의 취업률은 70%에 이른다. 나머지 30%의 학생들은 진학을 택한다. 대다수 교육전문가들이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처음 학교를 입학한 신입생들은 90%가 진학을 원한다. 그러나 3학년이 됐을 때 입학 당시 진학을 원한다고 답했던 학생의 상당수는 ‘자진해서’ 취업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들은 전문계고를 나왔다는 열패감(劣敗感)이 아닌 ‘여상’을 나왔다는 자부심을 안고 사회로 나선다.

    그 비결은 특별한 데 있지 않다. 학교가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꿰뚫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는 점이다. 마지못해 변화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여겼다는 점에서 학교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학교에는 취업준비생들의 직장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시뮬레이션 형 기업실습실이 갖춰져 있다. 실제 회사의 사무실과 같은 형태로 꾸며진 이 곳에서 학생들은 상사의 결재를 받으며 직장 생활을 익힌다.

    전공별로 설치된 직업실습실과 예비창업자로서 경영을 배울 수 있는 ‘학교기업’도 이 학교의 자랑이다. 특히 ‘학교기업’은 학생들이 자기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원재료 구매부터 제품생산, 기획, 영업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직접 체험하도록 해, 직업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학생들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졸업식 가운을 일본에 수출하는 ‘기특한 사고’도 쳤다.

    ◇ 대일디자인관광고, 발상을 전환한 생활지도…학생을 바꾸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대일디자인관광고는 생활지도로 위기를 넘어선 경우다. 이 학교에서는 두발을 단속하지 않는다. 치마길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염색이나 장신구 규제도 까다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스스로 자기관리를 한다.

    체벌금지를 놓고 학교 안팎이 몸살을 앓을 때, 이 학교에서는 이미 체벌이 자취를 감친 뒤였다. 체벌도 없고 단속도 느슨하지만, 학교의 생활지도에는 문제가 거의 없다.

    교사들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학생들과 함께 등산을 하고 소풍을 떠난다. 삼겹살 파티도 연다. 이 모두가 학생들의 닫혀있는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한 고된 과정들이다. 학생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자기를 믿어주는 교사가 있는 학교, 학생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해 수업에 집중한다. 학교는 이런 학생들을 위해 전국 최고수준의 직업별 실습실을 갖췄다. 호텔 바를 연상시키는 칵테일 실습실을 비롯 이 학교의 현장체험형 실습과정은 학생들이 직업에 대한 흥미를 갖고 스스로 자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본인이 흥미를 가진 직업을 선택하는데 대학 졸업장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 경기국제통상고, 변화에 대한 자신감…학생들 변화 이끌어
    경기 부천의 경기국제통상고(구 부명정보산업고)는 올해 초 교명을 변경했다. 특성화고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 학교는 그 전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 학교는 불과 몇 년전까지 흡연과 학교폭력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지금 이 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인 부천에서 입학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교가 됐다.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화려하게 탈바꿈한 것이다. 그 비결 역시 특출난 데 있지 않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학교 역시 체험중심의 실습과정을 중시한다.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신감을 잃어버린 채 목표 없이 하루를 보내던 학생들은 교사들의 격려와 함께 새롭게 거듭났다. 분명하게 자기목표를 찾은 학생들에게 전문계고는 더 이상 낙인이 될 수 없었다.

    최근 이 학교는 일반계고 학생 중 입시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인문계고 학생들을 위한 직업 실습과정을 개설, 주중 야간과 주말, 그리고  방학을 이용해 이들이 체계적인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육당국의 책임과 역할…진지한 재검토 필요해
    그러나 모든 전문계고가 이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학교 스스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결국 교육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사회적 인식에만 책임을 떠넘겨서는 곤란하다. 전문계고의 진학률 역전현상은 현재 전문계고가 안고 있는 여려가지 어려움 중 하나일 뿐이다.

    맞춤형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요구하기 전에 그 학교가 과연 그럴만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직업교육의 질을 높이라고 하기 전에 해당 학교 교사들의 사기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획일적으로 목표와 기간을 정해 일방적으로 계획을 추진하고, 점수로 환산해 평가를 할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스스로 가장 적합한 방안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교육당국이 할 일은 일사불란한 지휘가 아니라, 해당 학교 교사들이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재직자 특별전형 확대 등, 교육당국 적극적 개입 필요
    또 한 가지 교육당국이 나서줘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선 취업, 후 진학’ 전형과 같은 전문계고 출신 재직자들을 위한 특별전형의 확대이다. 전문계고를 백안시하는 사회적 풍토는 학교와 학생들의 노력만으로 깨트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여전히 임금격차와 인사상 불이익은 존재한다. 따라서 전문계고 출신 취업자들이 보다 쉽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서는 범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장학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전문계고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마다한 채 입시학원을 전전하는 현재와 같은 폐단은 상당 부분 시정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전문계고 출신 취업자를 위한 ‘재직자 특별전형’은 서울의 중앙대 등 극히 일부학교에서만 실시되고 있다. 교과부는 대학에 권고는 할 수 있어도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문제만큼은 교과부가 ‘오지랖’을 넓혀야 한다. 이보다 훨씬 더 민감한 등록금 인상도 2년 연속 사실상 동결토록 ‘권고’했던 교과부다.

    성공한 전문계고 정책, 교육현안 푸는  근본 해법 될 수 있어 
    전문계고 부활은 단순한 직업교육 활성화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육을 넘어 사회적으로 이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과열된 입시경쟁, 늘어만 가는 사교육비 부담, 해법이 없는 청년취업난 등은 교육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난마처럼 없힌 교육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