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현충원서 송진우 선생 탄생 121주년 추모식일부 좌파, ‘반공투사’ 송진우 선생을 ‘친일파’라 주장
  • 의병장이었던 스승에게서 배운 뜻을 학교와 신문사로 이루려 했던 독립투사, 해방 이후 조국의 기틀을 잡기 위해 ‘반공’을 선언하고 활동했던 정치인. 바로 고하 송진우 선생이다.

    국립서울현충원(원장 정진태)은 6일 오전 11시 30분, 애국지사묘역에서 ‘송진우 선생 탄신 121주년 추모식’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189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송진우 선생은 어렸을 적 의병활동을 했던 기참연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하지만 송진우 선생은 무력투쟁 이전에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 일본 메이지대로 유학한다. 선생은 귀국 후 중앙학교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인촌 김성수 선생이 만든 <동아일보>의 사장으로 취임한다.

    30세 때인 1919년 3․1독립운동에 연루된 혐의로 투옥되어 1년 6개월 옥고를 치렀으며, <동아일보>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말소사건의 책임을 지고 강제로 사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사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는 1940년 일제에 의해 무기정간을 당했다.

    선생은 일제 패망 당시 치안권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정국에서는 ‘반공’을 선언한 뒤 환국지사후원회 결성, 상해임시정부의 법통 지지, 이승만과 국민총동원 방법 논의, 신탁통치반대 등 건국에 매진했다. 당시 송진우 선생은 ‘신탁에는 반대하지만 강대국 간의 세력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찬탁’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1945년 12월 30일 서울 자택에서 한현우, 유근배 등으로부터 저격당했다.

    송진우 선생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1988년 5월 3일 애국지사묘역 제198호에 안장됐다.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거행되는 이번 추모식은 선생의 3.1독립운동정신을 알리고, 고인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추모식에는 유가족, 국가보훈처․광복회 관계자, 기념사업회 회원, 추모객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측은 “이번 송진우 선생 추모식은 물론 앞으로도 순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발전하고 있는 관련단체의 추모행사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부 좌파단체들은 이런 선생에 대해 친일파라며 매도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동아일보> 일장기 사건 당시 기자를 나무란 것, 신탁통치에 신중히 접근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 등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이승만 박사와 함께 ‘반공주의’를 내세운 것을 문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