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 OECD 1위, 노인자살 특히 심각,따뜻한 사회적 관심만이 해결방법
  • 지난 23일 경북 칠곡군 한 숙박업소 객실에서 60대 노부부가 독극물을 마시고 운명을 달리한 사건이 일어나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 두사람 모두 말기암 상태로 투병 중이었으며, 경찰은 '부부가 함께 암에 걸려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 내용 등을 미뤄 신변을 비관한 자살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 정오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 안에서 나이 지긋한 노인이 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지난달 30일 예산군 예산읍의 한 아파트에서는 최모(71) 씨가 낡은 구두 한 켤레를 남기고 몸을 던졌고, 같은 달 24일에는 충남 서산시 부석면의 한 슬레이트 집에서 윤모(69) 씨가 숨진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됐다.

    모두 병을 앓거나 자식, 집안 문제 등 처지를 비관한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들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로 나라 전체가 시끄럽기도 했다. 사실 우리 국민의 자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31명. 29명이던 2009년보다 19%나 늘어났다. 세계적으로 봐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하루에 42.2명, 34분에 1명꼴로 자살하고 있다.

    이 같은 국가적 문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노인들의 극단적 선택이다.

    최근 한림대 고령사회연구소는 65세 이상 노인 자살자가 20년 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선진국은 50세가 넘으면 행복도가 증가해 자살률이 감소하는데 우린 정반대인 것이다. 노인 자살예방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 ▲ 노인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연령별 자살유형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이 높은 게 특징이다. 선진국의 경우 55세를 넘으면 행복도가 증가해 자살률이 감소하는 것과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 ⓒ 자료사진
    ▲ 노인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연령별 자살유형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이 높은 게 특징이다. 선진국의 경우 55세를 넘으면 행복도가 증가해 자살률이 감소하는 것과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 ⓒ 자료사진

    ◇ 노인자살, 계획적이고 성공률도 매우 높아

    노인자살은 오랫동안 계획하고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독거노인이 많아 자살시도 후 구조 가능성이 낮고 도움 받을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통계자료를 보면 특히 농어촌 시골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많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인들의 40%는 농약을 먹는 방법을 사용한다. 자식이 이혼하고, 자식의 사업실패, 본인이 병 등 극단적인 결심을 하는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노인 자살은 그 성공율이 약 25%에 이른다. 일반인의 그것에 비해 무려 4배나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노인자살은 계획적이고 사전에 징후가 나타나기 때문에 자살위험을 조기에 발견하면 전문상담 및 치료지원을 통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다른 연령층과 달리 작은 도움만으로도 자살의 문턱에서 구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독거노인과 경제 능력이 없는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노인자살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복지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고 특히 노인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지지체계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경기도 노인종합상담센터 김은주 실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누군가 옆에서 도와줄 사람은 없고 사회 지지체계도 없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며 “힘들거나 어려울 때 찾아가서 상의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지지체계가 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부부갈등, 가족갈등, 경제적인 어려움 등 어떤 문제이든지 전문 상담사가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서비스를 지원해 드린다”며 “용기를 내어 지역의 전문 상담사들을 찾아가 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툭히 노인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른 연령층의 자살과 달리 잠재적 자살 시도자를 발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김 실장은 “노인자살을 할 때 노인의 특성이 ‘나 힘들다’ ‘죽고 싶다’ 위기 전화를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노인자살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개입할 수가 없고 가까운 곳에 노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상담하고 발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 노인자살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자살 성공률이 4배나 높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독거노인이 많아 자살시도 후 구조 가능성이 낮고 도움 받을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 자료사진
    ▲ 노인자살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자살 성공률이 4배나 높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독거노인이 많아 자살시도 후 구조 가능성이 낮고 도움 받을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 자료사진

     

    ◇ 따뜻한 관심만이 최선의 예방

    “40년 동안 제 마음 속에 있던 무거운 것이 없어졌어요. 지금도 좌절되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하지만 빨리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난 19일 경기도 부천 소사노인자살예방센터 최숙자 상담사가 한 독거노인의 반지하 집을 찾았다.

    집주인 김명순(가명·65)씨가 환하게 웃으며 최 상담사와 함께 동행한 생명사랑교육단 홍금순(78) 할머니를 반겼다.

    김씨는 1년 전 수술한 허리가 잘못 돼 거동을 하지 못한다. 지팡이를 짚고서야 대문 밖을 한 발짝 나설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요양보호 3급에 해당돼 생활비, 병원비 등을 지원받는다. 식사 등 집안일은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해결한다. 김씨는 얼마 전 동사무소에서 도배며 장판을 새로 해 줬다며 해맑게 웃었다.

    김씨에게 유일한 가족은 인근에 사는 딸이다. 남편과 이혼한 김씨는 남매를 뒀지만 아들은 미국으로 간 뒤 연락이 끊겼다. 김씨는 딸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데 “맨날 아프다”고 하는 엄마를 보며 딸이 짜증을 낸다고 했다. 딸에게 많이 서운한 눈치였다.

    김씨는 40년 전 성폭력의 상처와 그로 인한 우울증과 불면증, 결혼 생활 동안 이어진 남편의 폭력, 이혼,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종교에도 의지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하고 싶었고 칼만 보면 죽음을 생각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김씨는 요양보호사가 알려 준 건강가정지원센터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노인복지관으로 연결돼 지금의 최 상담사를 만났다. 올 2월의 일이다.

    첫 날 김씨의 40년 전 아픔을 끄집어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상처에 대해 최 상담사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첫 날 오실 때는 굴뚝의 연기를 뚫어내느라 힘드셨죠. 아직도 남긴 남았지만 전에는 내가 내 마음을 공격하고 있었다고 할까 하여튼 검게 있었는데… 마음에 있는 걸 끄집어내면 산산 조각이 돼요.”

    목소리가 떨렸지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듯 보였다. ‘40년 동안의 굴뚝이 뚫렸다’는 김씨의 표현에 최 상담사가 “맞다. 40년 동안 막혀있던 굴뚝을 뚫었다”며 무릎을 쳤다.

    김씨에게 몸이 좋아지면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김씨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저는 미싱하던 사람인데 허리를 많이 사용해야 하나 봐요. 하고 싶어도 안 할까 그런 마음이 더 많아요.”

    김씨에게 앞으로의 희망을 말하기엔 아직 무리인 듯했다. 그보다 지금까지의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것’이 더 절박한 과제인 듯했다.

    “허리 나으셔서 복지관으로 오세요. 복지관 상담실에 오셔서 차 마십시다. 지금 운동 열심히 해서 복지관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세요. 그래야 운동을 할 수 있어요. 희망과 목표를 딱 정하시고.”

    최 상담사가 김씨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 주었다. 그제서야 김씨가 밝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