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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카다피 위에 겹치는 김정일
▶ 무아마르 카다피 덕분에 옛 동아그룹의 최원석 회장은 사막에서의 인상적인 밤을 경험했다. 단일공사로는 세계 최대로,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불렸던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맡았던 최 회장은 카다피를 만나기 위해 사막으로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카다피가 지배하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목, 1986년 카다피의 숙소를 폭격한 이후 카다피는 사막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막에서 목축생활을 하는 베두인(Bedouin)부족 출신인 카다피는 미국의 포격을 피하기 미니 밴에 텐트를 싣고 사막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최 회장은 카다피를 만나기 위해 4륜구동차를 타고 사막을 달려 카다피의 텐트에 도착, 카다피와 함께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 아래 사막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계속 맡게 된 것도 최 회장이 사막에서 카다피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 베두인은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아랍어의 ‘유목생활에 대한 집착, 토착’이라는 뜻의 베다위(Bedawi) 혹은 복수로 베두(bedu)에서 유래했다. “낙타들에게 물을 먹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낙타들은 항상 목말라 있고 많이 마시며, 태양은 뜨겁다. 바람이 불 때 상황은 더 나쁘다. 마치 열 지옥 같다. 오직 베두인족만이 이 삶을 견딜 수 있다.” 1940년대 아라비아사막을 횡단한 영국의 탐험가 윌프레드 테시거가 표현한 대로, 베두인들은 척박한 사막에서 낙타, 염소, 양을 이끌고 목초지를 찾아 유랑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베두인의 문화는 아랍문화의 모태다. 이슬람, 아랍왕조의 절정기 때 왕자들은 유모와 함께 베두인들에게 보내졌다. 베두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오염되지 않은 아랍어를 익히고, 밤하늘을 보며 명상하고, 호연지기를 키우도록 하는 것이 왕가의 전통이었다고 한다.
베두인들은 양과 낙타, 가족이 늘어날 때와 손님이 찾아올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손님에 대한 베두인의 환대는 극진하기로 유명한데, 범죄자라 해도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은 남에게 절대 내놓지 않는다고 한다. 탈레반이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는 것도 베두인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현대의 베두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문명세계를 모르는 촌뜨기로 무시당하며 유럽이나 아시아의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막의 밤을 체험케 하는 관광업으로, 혹은 도시주변이나 농장에서 노동을 하는 하층민으로 살고 있다.
▶ 리비아에는 약 140개의 부족이 있고, 그 중 30개 부족이 핵심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부족들의 뿌리는 물론 베두인이다. 카다피가 카다피 부족의 족장 역할을 하고 있고 마가리하 부족 등 주요 부족들이 카다피와 손을 잡고 군과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카다피 부족은 원래 힘 있는 부족이 아니었으나 1967년 대위의 신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리비아를 장악한 뒤 주류 부족으로 올라섰다.
카다피에겐 공식 직함이 없다. 쿠데타 성공 이후 대위 직함을 사용하다가 스스로 대령으로 진급한 뒤에도 수상이나 대통령 같은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점이 카다피가 부족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시위대에 대한 카다피의 대응은 베두인의 덕목과 너무 거리가 있다.
김일성을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는 카다피는 여러 모로 김정일을 연상시킨다. 나이도 김정일보다 한 살 아래로 비슷하고 스승도 같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대상으로 학살극을 펼치는 카다피, 굶주리는 인민의 참상을 외면한 채 충성파들에 에워싸여 개인왕국 유지에 급급한 김정일. 무엇이 다른가.
카다피의 내일이 예견되듯, 김정일의 내일도 길지 않음을 감지나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