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싫은 소리 듣기 너무 싫어한다”언론, 야당, 시민단체 외 누가 비판할 수 있나 대통령, 국민, 국가가 행복해지는 길
  • <방민준칼럼> MB에게 告함!

    ◇ “듣기 싫은 소리 듣기 너무 싫어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자주 대합니다. 때론 대통령을 비판하는 소리를 직접 듣기도 합니다.

    임기의 3분의 2가 지난 데 따른 ‘레임 덕’ 현상으로 넘긴다 해도 앞으로 2년이나 국가경영을 책임질 대통령을 절룩거리게 하는 것은 국가로선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나름 꼿꼿이 서서 국가 경영에 온 힘을 쏟고 있지만 일부 국민들은 대통령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들리는 비판의 소리는 대통령이 듣기 싫은 소리 듣기를 너무 싫어하고, 듣기 싫은 소리 할 만 한 사람 만나기를 너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리 하는 사람만 만나고 반기는 사람만 만난다는 뜻이겠죠.

    야당 지도자들과의 대화가 쉽게 성사되지 않는 것이나 불교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대통령의 듣기 싫은 소리를 참고 듣지 못하는 자세 탓이라고 말들 합니다.

    대통령의 신년 좌담이 방영된 이후 비판의 강도는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념의 편차나 친소를 떠나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언론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 연두기자회견에 익숙했던 국민들에게 달랑 대학교수와 앵커 두 사람과 나누는 대담 형식의 신년 좌담은 정말 생뚱맞게 보였습니다.

    한 언론사의 대기자는 칼럼에서 언론사를 대표하는 기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기고 대신 대담 장면을 취재하면서 얼마나 수치심을 느꼈을까’하고 통탄했습니다.

    좌담에서 대담자가 “우리 정치와 언론이 갈등을 부추긴다”고 말문을 열자 대통령은 “변하지 않은 곳이 몇 군데 있다”고 묵시적인 동의를 한 대목에서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이 정말 귀를 너무 닫았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 언론, 야당, 시민단체 외 누가 비판할 수 있나

    사실 야당이나 언론, 시민단체를 제외하고 대통령에게 반대의 소리, 비판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대통령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지만 행사장이나 시장, 거리에서 대통령의 손을 잡은 사람들로부터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 비판의 소리, 옳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고대 국가에서도 제왕이 ‘듣기는 싫지만 옳은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제왕의 잘못된 정책이나 언행 등에 대해 직간하는 조직을 두었던 것입니다.

    중국 전한(前漢) 때 간대부(諫大夫)라는 직간 제도가 생긴 이후 중국 왕조의 필수 조직으로 자리잡은 전통을 이어받아 조선조에도 사간원(司諫院), 사헌부(司憲府), 홍문관(弘文館) 등 소위 언론삼사(言論三司)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언론(言論)은 ‘언치논도(言治論道)’의 준말로 바람직한 치도(治道)를 둘러싼 논의를 의미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듣기 싫은 바른 소리’를 들어야 하는 고통은 대통령만이 겪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비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뜻이지요. 지도자가 지녀야 할 신성한 책무인 셈입니다.

    ◇ 대통령, 국민, 국가가 행복해지는 길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듣기 싫은 소리, 바른 소리 하기 어렵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떠날 각오를 해야 바른 소리 한두 마디 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요.

    이러면 어떨까요. 아예 대통령이 듣기 싫은 소리만 하는 비서관을 두는 것 말입니다. 듣기 좋은 소리, 칭찬받을 소리를 모두 빼고 대통령이 들으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기분이 언짢을 내용만 모아서 보고하는 것입니다. 혹 듣기 좋은 소리라도 하면 즉시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비서관이 직무에 충실할수록 대통령의 감성 불쾌지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참으며 새겨듣고 국정에 반영한다면 대통령이 행복하고 국민이 행복하고, 국가가 행복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사 부사장/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