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⑯  

     하버드의 석사 과정은 힘이 들었다. 공부는 배울수록 더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버드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공부한 1년 동안 나는 강연도 거의 나가지 않았고 대외 활동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곳도 실력 위주의 전쟁터나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 든 동양 유학생, 나라를 빼앗긴 비운의 인간이라고 해서 점수를 후하게 주지 않는다.

    7월 말이 되었을 때 나는 석사 과정을 수료했지만 경제 한과목에서 학점을 받지 못했다. 재수강을 받아야만 했는데 일단 다음 목표를 정해야만 했다.
    박사 학위를 받겠다는 목표는 정했지만 대학이 문제였다.
    하버드로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인가? 

    어느덧 내가 미국 땅을 밟은지 3년 8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보스턴의 머튼 교회에서 홀 목사(Erneet. F. HALL)를 만났다. 홀은 북 장로교 소속 목사로 나하고는 두어번 만난 사이였을 뿐이다.

    예배를 마친 내가 교회 밖으로 나왔을 때 홀이 불렀다. 멈춰선 나에게로 다가온 홀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러자 주름진 얼굴이 환해졌다.

    「리, 내가 존스 목사한테서 들었는데 박사 과정을 밟을 대학을 찾으신다구?」
    「예, 그렇습니다.」

    존스 목사는 이곳 머튼 교회의 주임 목사였다. 내 대답을 들은 홀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프린스턴으로 가시오. 내가 대학원 원장 웨스트 박사(Andrew. F. West)에게 소개시켜 드릴테니까.」

    놀란 나는 대답도 잊고 홀을 보았다. 그러자 홀이 다시 빙그레 웃는다.
    「내가 프린스턴 신학교 출신이어서 웨스트 원장하고 친합니다. 아마 웨스트는 내 청을 거절하지 못할거요.」
    「그렇게 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만.」

    말을 잇지 못한 내가 입 안의 침을 삼켰다. 문제는 학비인 것이다.
    등록금에다 기숙사비, 잡비를 대려면 워싱턴대에 다니면서 했던 것처럼 교회에서 강연을 하고 받은 기부금으로 충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석사 과정도 힘이 들었는데 박사 과정은 최소한 2년간을 분초를 아끼면서 공부 해야만 한다.

    그때 내 표정을 본 홀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걱정이 있는지 알겠소. 내가 웨스트 원장께 부탁해서 등록금을 면제하고 기숙사비를 받지 않도록 해보겠소. 그럼 되겠소?」

    나는 또 금방 대답하지 못하고 눈만 껌벅였다.
    주께서 도와주신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날 교회에서 제 학업을 도와주소서. 조선과 조선 민중을 위하여 제 학업이 성취되도록 힘을 주소서. 하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내가 입을 열었다.
    「주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주님께 영광을.」

    엄숙하게 말한 홀이 몸을 돌렸고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을 때 전보가 왔다.

    프린스턴 대학원 박사과정 장학생으로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그들은 워싱턴대와 하버드에까지 내 성적과 태도를 문의했고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승인 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원장 웨스트 박사에게 나를 추천해준 홀 목사의 배려가 없었다면 이런 은혜는 찾아오지 않았으리라.

    「기뻐요.」
    그 소식을 교회에서 들은 하루코가 얼굴을 활짝 펴고 웃었다.
    하루코는 이제 교회에 다녔고 세례까지 받았다.

    하루코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았다.
    「그럼 나두 뉴저지로 옮겨 갈까요?」

    농담이다. 하루코가 내 공부를 방해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