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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시요? 차라리 행시를 권하고 싶습니다.”
고시생 김정민(가명․32)씨는 지난해까지 외무고시를 준비하다 올 초 행정고시로 선회했다. 행정고시 국제통상직렬에 응시, 통상교섭전문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가 1년 여간 준비해왔던 외무고시를 던져버리고 행시로 전향한 이유는 간단했다.외교통상부는 전문분야에 따라 특채가 더 많은 부처인데 ‘세습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물림이 계속되고 있는데다가 선발인원도 적어 경쟁이 더 치열하기 때문이다. 외무고시라는 정면승부 대신, 행정고시로의 선회를 택해 꿈을 이루겠다는 뜻이다.
또 다른 외시 준비생 이민희(가명․28)씨도 특별채용과 2부시험에 대한 부당함을 토로했다. 그는 “누구, 누구 자녀라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외교관 자녀들은 애써서 외시를 치를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면서 “외교관 부모를 둬 특별채용으로 외교부에 입성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온 몸에 힘이 빠진다”고 힘든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특별채용된 사람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진 않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외교관의 자녀로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매너, 감각 등을 갖춘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영어시험이 포함된 국가기관의 시험에서 굳이 네이티브(능통자)를 따로 뽑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들은 오는 2013년 외무고시가 폐지되고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외교관이 선발되는 것도 걱정스럽다. 김씨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영역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됐다”면서 “필기시험 위주였던 외시가 자질평가 등으로 인해 외국 경험이 더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아무래도 해외생활 경험이 많은 외교부 관계자들의 자녀가 좋은 점수를 얻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 외무고시 2부시험, 41% 고위직 자녀
실제 이 같은 ‘세습제’ 비판은 통계치로 만천하에 공개됐다. 5일 국회 외교통상위 소속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간 외무고시 2부시험(영어능통자 전형)을 통해 선발된 22명 중 9명인 41%가 전현직 장·차관 및 3급 이상 고위직 외교관의 자녀인 것으로 드러났다. 해마다 1~2명씩 선발된 셈이다.
총 30명을 선발하는 외무고시는 일반전형과 영어능통자 전형(정원 10%내외)으로 나뉜다.
영어능통자 전형인 외무고시 2부시험은 외국에서 초등학교 이상의 정규과정을 6년 이상 이수한 자로 응시자격을 제한하고, 시험과목에서도 1차 2과목, 2차 4과목을 평가했다. 반면 1부 시험은 1차 시험 5과목, 2차시험 6과목을 평가하여 형평성 논란을 빚어왔다.이에 외교부는 2004년부터 외무고시 2부시험을 폐지, 시험 과목은 일반분야와 동일하나 2차 시험 필수과목을 영어로 평가하는 영어능통자 전형을 실시해 왔다.
◇ 외교부 “특혜는 없다” 외쳤으나…
외교부는 영어능통자 전형에 대해 논란이 일자 같은날 오후 “외무고시 2부시험 및 영어능통자 전형은 공고부터 채용까지 전 과정에 외교부가 아닌 행정안전부의 주관 하에 치러지는 공개경쟁채용 시험”이라며 “특별채용이 아닌, 외교관 자녀에 대해 그 어떤 특혜도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혜 채용 의혹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유 전 장관 딸의 특별채용과정에서 외교부의 주장과는 달리 면접관으로 행안부 관계자가 아닌 외교부 고위관계자가 2명이나 참여했던 사실이 밝혀진데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행안부는 외교부 고위간부 자녀들의 특혜채용 의혹을 조사중이다.
행안부는 외교관 자녀의 채용ㆍ인사 관련 기록을 검토한 결과 외교부의 계약직 직원 400명 가운데 7명이 외교관 자녀인 것을 확인했다. 특별채용으로 외교부에 들어온 직원 7명 중에는 전직 대사를 포함해 고위직 자녀 3명이 2등 서기관과 과장으로 재직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