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⑩ 

     내가 햄린 목사한테서 세례를 받았을 때는 4월 23일이었다.
    나는 학업에 열중하는 한편으로 교회에도 빠짐없이 나갔으며 수시로 딘스모어 의원과 니덤 총장을 만나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면담을 상의했다.

    그러던 6월, 주미공사관 서기관 김윤정이 3등 참사관으로 승진하면서 주미대리공사가 되었다.
    신태무는 해임되면서 귀국했는데 김윤정은 소원을 성취한 셈이었다.

    현지 미국인 추천으로 채용된 서기생이 딱 1년만에 대리공사가 된 것은 주미 일본 대사관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좁혀 말하면 주미 일본 대사관의 아카마쓰 다케오 영사가 김윤정을 임명한 것이나 같다. 

    「모두 이공 덕분입니다.」
    축하차 들린 나에게 김윤정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하긴 나도 김윤정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편지를 공사관 파우치를 통해 민영환에게 보내기도 했다.

    오후 6시쯤 되었는데 김윤정 주위에는 직원과 축하차 찾아온 조선인 7, 8명이 둘러서 있어서 어수선했다.

    「공사관이 더욱 번성하시기를 바랍니다.」
    덕담을 한 내가 얼른 빠져 나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김윤정이 불렀다.

    「이공, 잠깐만 저 좀 보시지요.」
    다가온 김윤정이 나를 옆쪽 회의실로 안내하더니 문을 닫았다. 그러자 소음이 딱 끊기면서 둘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내 시선을 받은 김윤정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사람을 보낼까 했는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내일 박용만이란 분이 아드님을 데리고 이곳에 도착 한다는 전보가 왔습니다.」

    놀란 내가 숨을 삼켰다. 아들 태산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 땅을 떠난지 어언 반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연락도 주고받지 못했는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태산이는 어떻게 로스엔젤리스에 도착했는가? 또 로스엔젤리스에 있던 박용만을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가?

    내가 겨우 입을 떼었다.
    「태산이 그놈이 혼자 온 것입니까?」
    「그렇다는군요. 박용만씨하고 둘이랍니다.」
    「허어.」
    「자제분 나이가 몇이지요?」
    「올해로 여덟살 되었습니다.」
    「아직 어리군요.」

    잠깐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던 김윤정이 머리를 들고 나를 보았다.
    「이공께선 기숙사에 계시니 자제분을 제 집에 맡기시지요. 마침 빈 방도 있는데다 가정부가 도와줄 테니까요.」
    난감했던 참이지만 나는 선뜻 그러자고 하지 못했다. 폐가 될 것이었다.

    그러자 김윤정이 말을 잇는다.
    「며칠 자제분하고 같이 계시다가 제 집으로 옮기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전혀 불편한 것 없으니 이공께선 자주 들러 자제분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당분간 폐를 끼치겠습니다.」

    염치없는 짓인 줄 알았지만 나는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보고싶던 내 아들 태산이 온다니 가슴이 세차게 뛰었고 얼굴까지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 놈이 혼자서 오랫동안 태평양을 건너고 미국 대륙을 횡단하여 온 것을 생각하면 측은했고 미안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아버님은 무고하신가?
    태산 어미는 왜 태산이만을 배에 태워 보냈는가? 만일 한달 전에 이 일을 알았다면 나는 한달동안 걱정만 했을 것이다. 그것을 하루 전에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김윤정이 문득 머리를 들고 말했다.
    「참, 아카마쓰 영사께도 말씀 드렸습니다.」

    그때는 그것까지 보고하느냐는 반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사람 인정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