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산 지 9개월 됐는데 이곳을 사랑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벌써 떠났겠죠. 그런데 계속해서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사랑한다는 거겠죠."

    음악팬들 사이에서 '신촌 자취생'으로 소문난 스웨덴 출신 싱어송라이터 라세 린드(Lasse Lindh.36)를 17일 오후 홍대 근처에서 만났다.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만난 그는 얘기를 나눌 만한 좋은 곳을 찾아보자며 기자를 이끌었다. 신촌에서 9개월여간 혼자 살며 이 근방을 누비고 다녔다는 그는 마치 동네 터줏대감 같았다.

    상상마당 반대쪽 골목을 지나며 몇 군데의 카페를 가리켜 "정말 좋아하는 곳"이라며 기자에게 소개했다. 그는 홍대 인근과 신촌의 웬만한 카페와 술집들은 훤히 꿰고 있는 듯했다.

  • ▲ 스웨덴 싱어송라이터 라세 린드.  ⓒ 연합뉴스
    ▲ 스웨덴 싱어송라이터 라세 린드.  ⓒ 연합뉴스

    라세 린드가 서울에서 살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신선한 사랑 이야기로 인기를 얻었던 MBC TV시트콤 '소울메이트'에 그의 노래 '커먼 스루(C'mon Through)'와 '더 스터프(The Stuff)'가 쓰이면서 인기를 얻어 2006년 국내 음반사인 칠리뮤직코리아의 제안으로 첫 내한 공연을 하게 됐다.

    이후 2008년 3월 연 내한 공연이 전회 매진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지난해 4월 세번째 영어앨범 '스파크스(Sparks)'를 발매한 뒤 한국에서 공연,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자 10월 말부터 신촌의 한 오피스텔에 방을 구했다.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 자리잡은 그는 서울에 머물게 된 계기에 대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처음엔 앨범 홍보를 위해 당분간 몇 개월만 머물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내면 지낼수록 이곳 생활이 더 좋아졌어요. 한국인들은 정말 재미있고(fun) 이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워요."

    그는 서울이란 큰 도시에서 많은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면서 만든 곡만 벌써 30곡이 넘는다. 이 곡들 중 일부가 그의 다음 앨범에 담길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앨범의 주제는 '작은 가슴(heart)을 가진 인간이 이 큰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survive) 수 있는가'에 관한 거예요. 특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이 큰 도시에서 너무 힘든 일이에요. 사람들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죠. 이런 곳에서 한 사람만을 선택해 충실하기는 힘들어요. 이런 문제가 저한테는 매우 흥미로웠고 그런 생각들이 음악에 녹아들었어요. 노래 가사들이 주로 외로움과 소울메이트를 찾는 것에 관한 것들이고 사운드 역시 도시의 맥박(pulse)을 나타내듯 빠르고 강한 리듬이 담길 거예요."

    그는 앨범 녹음까지 서울에서 하려고 했지만 그간 앨범을 함께 만들어 온 프로듀서와 컴퓨터 작업 등을 위해 스웨덴에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오는 10월 스웨덴으로 떠난다.

    그는 이번 앨범이 자신의 음악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거라고 했다.

    "최근 발표한 3개 앨범이 전반적으로 사운드가 비슷한데, 이로써 이런 음악은 다 끝냈고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 변하지 않으면 저 스스로가 지루해지는데, 그럼 더 계속할 이유가 없는 거죠. 아티스트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거예요. 그동안의 제 음악을 좋아한 팬들은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앨범은 어쿠스틱 드럼이나 기타가 없고 일렉트로닉이 대부분인 모노톤(monotone) 사운드로 이뤄질 겁니다."

    최근 유행하는 대중음악의 흐름을 좇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트라이베카'라는 밴드로 활동하던 10년 전부터 일렉트로닉 음악을 했으니 유행을 따라간다고 할 수 없어요. 오히려 너무 일찍 시작한 셈이죠."
    그러면서도 그는 주류(mainstream) 음악에 편입되는 데 대한 거부감은 없다고 했다.

    "콜드플레이나 뮤즈, 레이디오헤드는 지금 주류로 분류되며 엄청나게 상업적인 밴드들이지만 처음엔 모두 인디 밴드로 시작했고 그렇게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주류와 주류가 아닌 음악의 사이에 장벽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대부분 멜로디는 좋은데 너무 잘 만들어진 상품(well-made product)같아요.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그렇긴 하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미국 스타일을 따라하는데 그건 좋지 않다고 봐요. 자기만의 특별한 개성이 없으니까요."

    그는 한국 문화 역시 좋아하는 점이 많지만 이상한(weird) 점도 많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너무 부모와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의존적이고 부모가 시키는 것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특히 여성에게는 부모의 구속이 더 심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모텔, 러브호텔이 이렇게 많은 것도 처음 봤고 성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것도 이상한 점이예요."

    그는 한국에서 느낀 이런 다양한 생각들을 담아 에세이도 쓰고 있다.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쓰기 시작한 이 책은 내년 봄께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또 스웨덴으로 떠나기 전 국내 투어 콘서트도 연다.
    오는 9월 18일 부산, 19일 대구를 거쳐 10월 2-3일에는 서울에서 공연한다. 지방에서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콘서트를 준비하느라 바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공연은 너무 많이 연습하면 정작 중요한 느낌을 잃기 때문에 함께 연주하는 밴드와 몇 차례 맞춰보는 것 외에는 연습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히 '훈훈한' 외모와 감성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목소리 유지를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커피도 마시지 않아요. 얼굴은…아직 젊어보여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는 게 다행이죠.(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