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은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임금이 있는 궁궐)인 경복궁의 정문(正門)으로, 경복궁과 함께 조선 건국 직후인 1395년(태조4년) 건립됐다.
    건립 당시의 이름은 사정문(四正門)이었으나 이후 1425년(세종7년)에 광화문(光化門)으로 이름을 바꿨다.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다.
    그러나 광화문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전쟁을 겪으며 두 차례 소실되는 등 아픔을 겪었다.

    처음 광화문이 불탄 것은 임진왜란 때였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은 선조가 왜군을 피해 피난갈 때 일부 백성이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성의 궁성에 불이 났다. 거가(車駕.임금이 탄 수레)가 떠나려 할 즈음 간악한 백성이 먼저 내탕고에 들어가 보물을 다투어 가졌다. 이윽고 거가가 떠나자 난민(亂民)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례원과 형조를 불태웠다. 두 곳에 노비문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창고를 크게 노략질하고 불을 질러 흔적을 없앴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 세 궁궐이 한꺼번에 탔다."
    광화문은 이 당시 경복궁과 함께 불탔거나 이후 여러 차례 치러진 왜군과 조선ㆍ명 연합군의 전투 때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은 7년 만에 왜군이 물러가면서 끝났지만 광화문은 그 이후 270여 년 동안 다시 세워지지 못했다. 국가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광화문이 다시 건립된 것은 조선 말에 이르러 고종이 즉위하고 난 뒤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로 땅에 떨어진 왕실의 존엄성을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1865년(고종2년) 경복궁을 다시 짓기를 대왕대비인 신정왕후에게 건의했으며 이때 광화문도 함께 재건됐다.
    하지만 광화문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이 헐릴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당시 일본 도요대(東洋大) 교수가 신문 기고를 비롯한 여러 방법으로 이에 반대, '철거'에서 '이전'으로 가닥이 잡혔다.
    야나기 교수는 당시 기고문을 통해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생명이 조석(朝夕)에 절박하였다. 아! 어찌하면 좋을까?"하고 탄식하고 일본인들에게 "가령 일본이 쇠약하여 마침내 조선에 합병됨으로써 궁성이 폐허가 되고 그 자리에 저 양풍(洋風)의 일본총독부 건물이 세워지고 에도성(江戶城)이 헐리는 모습을 상상해 주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지켜진 광화문도 한국 역사의 비극인 한국전쟁의 포화는 비켜가지 못했다. 전쟁을 거치며 목조로 된 다락 부분이 불에 타 사라졌다. 두 번째로 겪은 소실이었다.
    이후 광화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때인 1968년 아랫부분인 석축은 그대로 두고 윗부분만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했다.
    하지만, 당시 문화계에서는 이를 두고 '목조건물을 철근콘크리트로 다시 만드는 것은 복원이 아닌 모조'라는 반론이 많았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시인 서정주는 "콘크리트라면 굳이 광화문을 복원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고 미술평론가 수도륜 씨도 "전통적인 한복 바지를 입은 노인이 양복 천으로 만든 저고리를 걸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광화문은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발표한 경복궁 복원계획의 하나에 포함돼 목조 구조로 되살아나게 됐다. 일제강점기와 1968년 복원을 거치면서 틀어지고 옮겨진 부분도 바로 잡았다.
    광화문 복원공사는 경복궁내 왕과 왕비의 처소인 침전(寢殿)지역과 왕세자가 생활하던 동궁(東宮)지역, 태원전(泰元殿)지역, 흥례문(興禮門)지역 복원을 마친 뒤 2006년 12월4일부터 시작됐다.
    용마루 취두철거로 시작된 광화문 복원 공사는 발굴과 축조로 이어져 약 4년간 계속됐으며 그 결과 오는 15일이면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다시 일반에 드러낸다.
    조선조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로 숱한 고난을 겪은 광화문이 15일 이전 복원의 대역사를 마치고 615년의 역사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공개 이후에도 동십자각 주변의 궁장을 설치하는 공사와 하수암거(하수도) 이설 공사 등은 연말까지 계속 진행한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