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26)

     모니카 식당은 중급(中級) 식당으로 낮에는 차를 팔고 저녁부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모니카 식당이 보이는 길 아래쪽 로터리에 멈춰 섰을 때 옆으로 김일국이 다가와 섰다.

    오후 7시 반, 이미 주위는 어두웠고 드문드문 세워진 가로등 빛발 속으로 눈가루가 흩날렸다.
    추운 날씨였다. 따뜻한 서부에서 동부로 건너온 후부터 나는 추위로 고생했다.

    「나으리, 식당 2층 3호실에 예약이 되었습니다.」
    앞쪽을 향한 채로 김일국이 말했다. 옆으로 추위에 몸을 웅크린 남녀가 바쁘게 지나고 있다.

    김일국이 말을 잇는다.
    「식사를 하시다가 8시 반에 이층 화장실로 가십시오. 화장실 옆에 비상계단이 있으니 그곳으로 나와 곧장 댁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알겠소.」

    다시 발을 뗀 내가 길게 숨을 뱉았다. 긴 숨이 흰 수증기가 되어 앞으로 품어졌다. 서너 걸음 떼는 사이에 김일국은 어느새 행인 사이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식당에 도착 했을 때는 7시 50분이다.
    지배인에게 내 이름을 대었더니 곧 2층 3호실로 안내되었다. 김윤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혼자 앉아 기다렸다.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초조했다.

    일본의 개가 되어있는 반역자. 그것도 조선 관리에 대한 분노가 나를 주저 없이 이 일에 가담토록 만들었으리라.
    방문이 열리고 김윤정이 들어섰을 때는 8시 정각이었다.

    「기다리고 계셨군요.」
    웃음 띤 얼굴로 다가온 김윤정이 예의바른 태도로 나에게 목례를 하더니 앞쪽에 앉는다.

    김윤정은 1897년에 도미하여 워싱턴의 하워드대를 졸업하고 나서 작년에 미국인 추천으로 현지 임명된 인물이다.

    종업원에게 요리를 시킨 후에 다시 둘이 되었을 때 내가 물었다.
    「조선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날씨 묻듯이 가벼운 말투를 썼다. 그러자 김윤정이 빙긋 웃는다.
    「이공같은 분이 계시니 희망은 있습니다.」
    매끄럽게 넘기는 태도에 내 얼굴이 굳어진 것 같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김윤정이 말을 잇는다.
    「이공의 명성은 이곳에서도 알려져 있지요. 그래서 오늘 다녀가신 후에 일본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이공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놀란 내가 눈만 크게 떴을 때 김윤정이 조끼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며 말했다.
    「이 곳에 잠깐 들려서 인사를 하고 가신다고 했는데 곧 오시겠군요.」
    「누가 말입니까?」

    내가 물었을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동양계 신사 하나가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낯이 익다. 그때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며 묻는다.
    「아니, 고베에서 사이베리아(S·S·Siberia)호를 타고 오신 분 아닙니까?」

    그 순간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워싱턴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다는 백제계 영사, 아카마쓰 다케오(赤松武雄)라고 했던가?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웃음을 짓고 아카마쓰를 맞았다. 나에게 악수를 청한 아카마쓰도 얼굴을 펴고 웃는다.
    「이씨 성을 쓰신다고만 하셨는데 공이 바로 이승만씨였군요.」
    「두 분이 아시는 사이였습니까?」

    그때서야 끼어든 김윤정이 묻자 아카마쓰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인연이라고 하지요.」

    나는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았다.
    8시 30분에 이 자리를 피해야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