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24)

     「혹시 서기관 중 누가 날 만나보라고 하지 않습디까?」
    이강이 물었으므로 내가 머리를 들었다.

    김윤정이다. 그러나 나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내 표정을 본 이강이 빙그레 웃었다.

    「김윤정이겠지요. 그자는 이곳에서 현지 채용된 서기관인데 예의가 바르지요. 나한테 뿐만 아니라 일본 놈들한테도.」
    그리고는 이강이 길게 숨을 뱉는다.
    「이제 곧 그자가 차기 주미 대리공사가 될 것이오.」

    김일국은 대리공사 신태무는 엄비가 의친왕 이강을 감시 시키려고 보낸 정보원이라고 했다. 그럼 이강이 압력을 넣어 신태무를 몰아낸 것인가?

    그때 이강이 말을 이었다.
    「김윤정이 손을 쓴 거요. 주미 일본 대사관에 부탁을 해서 조선의 일본대사가 압력을 넣은 것이지. 조선의 외교권은 이미 일본이 장악하고 있으니까 쉬운 일이지요.」
    「......」
    「그자는 일본의 개요. 홍철수는 김윤정의 위세에 밀려 스스로 수하가 되었고.」
    「왜 김윤정을 처단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물었더니 이강이 한동안 눈만 껌벅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공이 도와주시겠소?」
    「어떻게 말씀입니까?」
    「그자를 유인해내는거요.」

    긴장한 내가 숨을 죽였고 이강의 말이 이어졌다.
    「같이 저녁을 먹자면서 불러내면 나머지는 독립협회 사람들이 처리할겁니다. 아마 김윤정은 일본인 암살단을 데리고 나타날 테니 일석 이조가 되겠소.」

    이강이 찾아온 목적은 이것이었던 것이다. 내 안색을 살핀 이강이 그늘진 얼굴로 웃었다.
    「내가 밀서를 전하도록 딘스모어를 만나게 해 드릴 테니까 염려하지 마시오.」
    「그렇다면 안심했습니다.」

    나도 쓴웃음을 짓고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오늘 공사관에 가셔서 김윤정한테 저녁식사 초대를 하세요. 김윤정은 가족과 함께 공사관 건물 이층에서 살고 있으니까 공사관 앞쪽 모니카 식당으로 초대하면 의심하지 않고 나올 겁니다.」
    「......」
    「지금 이공은 일본 암살단의 첫 번째 표적이 되어 있어요. 일본은 어떻게든 그 밀서를 빼앗아 없애 버리려고 할 겁니다.」
    「밀서가 그만큼 효력이 있을까요?」

    내가 물었더니 이강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겠소? 이제는 밀서가 일백장이 온다고 해도 미국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외면한 채 이강이 말을 이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몸부림도 짓누르려는 겁니다. 철저하게 진압하겠다는 표시로 밀서를 없애려는 것이오.」

    미국에 온지 5년이 된 이강이다. 그동안 조선 땅까지 온갖 염문이 전해졌고 2년 전인 1903년 3월에는 뉴욕 헤럴드에 성명식 인터뷰 기사가 발표 되었다. 그것은 이강이 미국에 매료되어 영주권을 신청할 것이며 왕위 계승권도 포기했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이강은 1877년생이니 나보다 두 살 아래로 29세가 된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이강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공, 오늘 저녁 8시에 식당 예약을 해 놓겠습니다. 이공은 그 자리에 참석만 하시면 나머지는 우리가 다 처리할 겁니다.」

    나는 잠자코 이강의 손을 잡았다. 시선이 마주쳤지만 이제는 조금도 어려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겁이 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