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22)

     나와 김일국은 인도 안쪽의 건물 옆으로 마주보고 섰다.

    내가 김일국을 쏘아보았다.
    「황제의 밀서를 품고 오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먼저 시치미를 떼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내가 물었더니 김일국이 여전히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한다.
    「공사관 안에 소문이 퍼진지 한 달쯤이나 되었으니 이미 일본 대사관에서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눈만 껌벅이는 나에게 김일국이 말을 이었다.
    「아까 공사관에 오시고 나서 홍서기관이 김서기관한테 말하는 것을 지나가다 들었지요. 아마 지금쯤 공사관 직원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밀로 하라던 대리공사 신태무도 알고 있지 않겠는가? 나는 홍철수의 경박한 언행에 화가 났지만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때 김일국이 물었다.
    「대감, 지금 어느 호텔에 묵고 계십니까?」
    「그건 왜 묻습니까?」
    「위험하니까 숙소를 옮기셔야 합니다. 일본 자객이 대감을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난 대감이 아니오.」

    그렇게 말했더니 김일국이 손을 뻗어 내 코트 소매를 쥐었다.
    「공사관의 관원들은 모두 일본의 첩자라고 봐도 될 것이오. 아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대감.」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내가 잡힌 옷소매를 흔들어 빼내면서 말했더니 김일국이 눈을 크게 떴다.
    「작년 말에 공사관에 찾아왔던 청년 두 명이 피살되었습니다. 둘 다 재미(在美) 독립협회 회원들이었지요.」
    「재미(在美) 독립협회라니? 그런 단체도 있습니까?」
    놀란 내가 물었더니 김일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작년에 결성된 단체인데 회원 수는 30명쯤 됩니다.」
    「그대는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제가 그 회원입니다.」

    놀란 내가 김일국을 유심히 보았다. 김일국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이윽고 내가 다시 물었다.
    「회장은 누구시오?」
    「박용수라는 분이셨지요.」
    그리고는 김일국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그런데 작년 말에 공사관을 찾아와 두 서기관을 만났지요. 그리고나서 며칠 후에 부회장하고 둘이 피살되었습니다.」
    「......」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소지품도 다 빼앗겨서 강도에게 당한 것으로 보도 되었지요.」
    「......」
    「하지만 나는 박회장이 찾아온 후에 두 서기관이 자주 일본 대사관 사람들을 만난 것을 압니다. 박회장은 둘의 꼬임에 빠져 암살당한 것입니다.」
    「대리공사는 어떻소? 믿을 만 합니까?」
    「그분은.」

    입맛을 다신 김일국이 말을 이었다.
    「엄비가 보낸 정보원이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분은 의친왕의 동향을 살펴 엄비한테 보고하는 것이 일입니다. 다른 건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는 저도 모르게 김 숨을 뱉았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은 지금 워싱턴 근처의 버지니아주 세일럼의 로노크 대학(Roanoke Collage)에 다니고 있다. 1901년 3월에 도미했으니 5년째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엄비는 순종의 후사가 없으니 제 자식인 영친왕(英親王) 이은으로 후사를 이으려고 이강을 견제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