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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 현충일날, 나는 국립묘지에 잠들어 계신 고 김용배 장군의 묘소를 또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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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충원 ⓒ 연합뉴스
내가 그 묘소에 도착해보니, 거친 풍파를 겪으며 패인 주름살에서 과거의 고된 삶을 읽을 수 있는 시골 할머니 한 분이 북어와 무침, 과일 등 조촐한 제사음식을 묘소 앞에 차려놓는 중이었다.
나는 어디서 오신 할머니냐고 물었다. 경상북도 문경에서 왔다는 할머니의 대답이었다. 고 김용배 장군과의 관계를 물었더니 바로 부인이라고 했다.
그러면 송조어머님이시냐고 다시 물었더니, 송조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을 뜨셨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고 김용배 장군이 생전에 나에게 버렸다고 이야기한 조강지처가 확실했다.
나는 그 할머니에게 “송조를 좀 만나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했더니 “송조도 죽었습니더”하였다.
세월따라 가다가 가버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고 김용배 장군이 생전에 말씀하시더니, 송조도 송조어머니도 모두 아주 가버렸구나. 인생이란 이렇게 무상한 것이며, 반세기의 세월이 긴 것인가, 그 사람들의 생애가 짧은 것인가 나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고 김용배 장군과의 관계를 길게 설명하였다. 할머니는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 별로 말이 없었다. 나는 묵념을 올리고 할머니와 헤어졌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신식 새 여자에게로 마음 돌린 남자, 버림 받았지만 그 옛날 순정을 다바쳐 따르던 남자의 고혼을 달래느라 천리길 마다않고 묘소를 찾아온 여자, 모두 인간이기에 그러하다.
고 김용배 장군은 생전에 사회생활에서, 그리고 가정생활에서,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신이 아니었기에 우리 마음속에 더욱 친밀하게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나 무인(武人)으로서는, 남다른 사명감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담한 용기와 누구도 따르기 힘든 순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상황을 잘 판단하는 형안(炯眼)과 넓은 도량을 가진 명장(名將)이며, 성장(聖將)에 가까운 큰 인물이었다.
내가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 김용배 장군 동상 앞에서 메모하는 동안, 열을 지어 지나가던 단체관람 고등학생들이 설명문에는 전혀 눈길조차 던지지 않고 “김용배 준장”, “김용배 준장”하고 큰 소리를 내면서, 주마간산식으로 겉돌며 지나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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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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